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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팅게일 기장 받는|방송통신대 박명자 교육연구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간호사가 된 뒤 상은 이번에 처음 타봅니다. 너무 큰상이라 기쁘기보다 오히려 송구스럽습니다.』
전 세계 간호사들 중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이 뛰어난 간호사들에게 2년마다 한번씩 수여되는 나이팅게일기장을 받는 박명자씨(59·한국방송통신대 교육연구관).
박씨는 올해 17개국 25명의 수상자중 한 사람으로 25일 대한적십자사 86주년 기념식장에서 상을 받는다.
박씨의 간호사생활은 6·25전쟁과 함께 시작됐다.
당시 서울대 간호학교 2학년생이던 그는 성당에 갔다가 전쟁소식을 듣고 동료학생들과 함께 의정부로 가 부상병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전쟁의 와중에서 환자들만 병원에 남겨놓고 군대가 철수하는 바람에 인민군에 붙들려 대동강까지 끌려가기도 했다.
감시의 눈을 피해 도망쳐 서울로 다시 온 박씨는 수도육군병원에서 간호사 활동을 계속하다 육군간호학교에 들어가 53년 소위로 임관했다.
56년 제대해 학교를 마친 그는 서울대병원 간호사로 있으면서 군대에서 배운 전신마취를 민간병원에서는 처음으로 실시했고 중환자실·회복실 창설에 큰 역할을 해냈다.
박씨는 전국의 의사·간호사들을 모아 마취·소독 등 위생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지방병원에 수술환자 마취를 위해 출장도 많이 다녔다.
그는 고려병원 간호과장을 거쳐 경기간호전문대·철도간호전문대 등에서 강의하며 틈틈이 복지원봉사활동, 넝마주이·버스안내양에게 보건위생교육을 하는 등 숨돌릴 겨를 없이 지냈다.
『일할만한 사람이 없던 때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박씨는 41세 되던 해인 72년 임상에서 손을 떼고 교직으로 전환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보건·위생·상담교육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전쟁 때부터 천주교 수도자들과 함께 생활해오면서 그들의 부지런함과 희생정신을 본받으려 노력했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전쟁중 환자에 대한 지극한 정성이 사랑으로 발전, 부부가 된 남핀과의 사이에 1남3녀를 두고 잇다. <안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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