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곡예소녀 주희양이 「입으로 쓴 감사의 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제게도 옷과 사랑을 주시고…”/가톨릭 여신도 5명과 생활뒤 정상찾으면 신자집 입양키로/형사아저씨·식당언니 보살핌/카드에 일일이 고맙다고 구술/“서커스단장 큰죄 지었더라도 너무 큰벌 안주면 좋겠어요”
『제게 안경과 옷을 사주고 귀여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기 계신 아저씨들은 모두 저를 귀여워 해주셔서 친아빠 같아요. 무럭무럭 커서 이담에 아저씨들을 찾아올께요.』
7년간 온갖 학대속에 자라던 곡예소녀 심주희양(11)이 22일 오전 가톨릭 서울교구청 산하 평신도 단체인 성빈첸시오 아바울로회로 인계됐다.
자신을 데리러온 수녀 두사람이 손을 내밀때까지도 평소처럼 밝은 표정을 짓던 주희양은 열흘동안 자신을 보호해준 「형사아저씨들」이 작별의 악수를 청하자 형사들에게 매달리며 『엄마를 찾아달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12일부터 남대문경찰서2층 형사계 강력반 사무실에서 형사들과 동고동락해온 주희양은 처음에는 오랜 감금·학대의 후유증으로 극도의 대인기피증과 정서불안 상태를 보여 사소한 충고·지적에도 『상관하지 말아요』라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지르고 토라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담당형사들의 집에서 잠자며 가정의 화목한 분위기를 접하기 시작하면서 주위로부터의 따뜻한 사랑에 눈을 뜨고 굳게 단힌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었다.
엄마에 대해 물으면 고개를 크게 흔들면서 『나는 그런 것 몰라요』라며 화를 냈던 주희양은 20일 오후에는 김경부 형사과장에게 울음을 터뜨리면서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발 좀 찾아주세요』라며 매달리기도 했다.
글씨를 모르는 주희양이지만 21일 저녁 「형사아저씨들」을 놀라게 하고 기쁘게 만드는 깜찍한 일을 벌였다.
문방구에서 카드 수십장을 산뒤 송낙현 서장,형사과 간부·직원은 물론 인근 식당 여종업원,밤늦게 차·라면을 끓여준 다방 여종업원에게 보내는 감사의 사연을 일일이 구술했다.
자신에게 가장 엄하게 대한 김일기 형사(50)에게는 『그동안 저를 재워주고 먹여주고 옷과 과자 등을 사주셔서 고마웠어요. 커서 보답해 드릴께요』라는 사연을 정성스럽게 풀로 붙여 전달했다.
『식당언니에게,밥을 주고 누룽지를 튀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언니가 끓여준 코피를 마시면서 울었어요.』
『건우식당 아저씨,밥을 공짜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럭무럭 커서 보답할께요.』
주희양은 마지막으로 송서장 앞으로 구술한 카드에서는 자신을 학대한 심동선씨(58)에 대해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더라도 큰 벌을 안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감옥생활 딱 한달만 하고 나오시는걸로 약속해주세요』라고 착한 마음씨를 보여주었다.
주희양의 편지 구술과정을 지켜본 최동선 형사계장 등 형사들은 『저 착한 어린 것이 이 험한 세상의 풍파에 시들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성빈첸시오 아바울로회측은 『주희양이 수원에서 신앙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5명의 여신도 자매들과 일정기간 함께 생활하면서 정상적으로 성장하도록 돌본뒤 신도가정에 입양시키겠다』고 밝혔다.<이하경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