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차이나 리스크' 방아쇠 당겨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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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은 2일 홈페이지(www.safe.gov.cn)에 '2007년도 금융기관 단기 외채 관리 통지'를 올렸다. 중국 금융기관들에 대해 해외에서 빌린 1년 미만짜리 단기 외채를 다음달 1일부터 대거 조기에 상환하도록 지시했다. 자국 은행들은 단기 외채를 70% 줄이고, 은행 이외의 다른 금융기관과 외국계 은행들에 대해서는 40%의 대외 단기 부채를 삭감하라는 내용이다. 외환관리국은 시장에 미칠 파장을 감안해 금융시장이 마감된 금요일 저녁에 이 같은 정책을 발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환관리국에 따르면 중국계 은행들은 지난해 할당받은 단기 외채 한도의 70%를 내년 3월 말까지 줄여야 한다. 특히 올해 4~6월 지난해 받은 한도의 45% 수준으로 줄이도록 지시했다. 그만큼 강도 높은 긴축 조치다. 외환관리국은 ▶금융기관이 보유한 외화예금 ▶국외금융기관 계좌에 50만 달러를 초과한 개인 예금 등을 조기 상환 대상의 단기 외채로 분류했다.

중국 정부가 단기 외채에 고삐를 죄고 나선 배경은 금융기관들이 국내외 금리차 등을 감안해 지난해 단기 차입을 크게 늘린 데 따른 것이다. 앞으로는 해외에서 자금을 빌리기보다 국내에서 자금을 융통하라는 의미다. 중국 외환관리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 대외 부채의 57%를 차지한 단기 부채는 지난 1년 동안 16%나 늘어 1811억 달러(약 171조원)에 달했다.

중국 정부는 가뜩이나 수출 급증으로 외환보유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위안화 절상 압력이 커진 가운데 단기 외채까지 늘어나 골머리를 앓아 왔다.

◆분석과 전망=대우증권 이건웅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과잉 유동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분석했다. 그는 "중국의 과잉 유동성은 ①무역수지 흑자 ②외국 기업의 대중국 직접투자 ③금융기관이 끌어오는 해외 부채로 구성돼 있다"며 "①과 ②는 인위적으로 손대기 어려워 단기 해외 부채를 줄여 유동성을 관리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정부도 이번 조치가 어떤 파급 효과를 나타낼지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단기 외채 상환으로 자산운용사들의 환매가 이루어지면 중국 증시에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며 "다만 중국이 순채권국이기 때문에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 만큼 충격을 미칠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우리은행 베이징(北京)지점 김범수 지점장은 "단기 외채 허용 한도가 줄면 달러가 중국 밖으로 빠져나가게 마련"이라며 "중국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의 경우 영업 위축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시장이 이번 조치를 "중국이 본격 긴축에 나섰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일 경우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라앉지 않는 여진=2일(현지시간) 뉴욕 다우지수는 0.98% 떨어졌다. 유럽 주가는 나흘 연속 하락했다. 이에 따라 증시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투자전략가인 드레스너 클라인보르트는 "공격적으로 주식 보유를 줄이고 국채를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10년 만기 미 재무부 채권 수익률은 일주일 사이에 연 4.63%에서 4.51%로 내려갔다. 엔 캐리 트레이드(저금리의 일본에서 돈을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자금)가 청산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이 다시 엔화로 몰리면서 엔-달러 환율은 3일 116.81달러로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은 일주일 사이에 4% 가까이 떨어졌다.

이에 따라 원-엔 환율도 급반등하고 있다. 국내 수출기업들은 한숨을 돌리게 됐지만 엔화를 빌려쓴 기업과 개인은 환차손 부담이 커지게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외화 대출 잔액은 전년 대비 163억 달러(67%) 늘어난 408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증가분 가운데 엔화 비중이 31.5%(51억6000만 달러)에 달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원-엔 환율 상승에 따른 엔화 대출 부실을 올해 주요 금융 리스크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발 쇼크는 과민반응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씨티그룹 전략가인 토드 엘머는 "위험 회피 성향이 커지면서 단기적으로 엔화가 강세를 보이지만 이런 현상이 지속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로드리고 라토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세계 증시는 여전히 튼튼하며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혜리.윤창희.손해용 기자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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