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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댄스클럽으로 변한다

중앙일보

입력

유럽 가톨릭·개신교 신자 줄자 남아도는 예배당 용도변경 해 식당·창고·아파트·사무실로

영국의 작은 도시 클리세러에 거주하는 이슬람교도들이 집단 예배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영국의 핵심 공업지대 인근에 위치한 이곳에 이들 아시아인이 처음 정착한 때는 40년 전. 약 300명의 무슬림은 그때부터 적합한 이슬람 사원 건립지를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시(市)의회는 훌륭하게 지어졌지만 용도를 찾지못한 한 건물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을 승인했다. 그동안 방치됐던 감리교 교회 건물이었다. 현지 무슬림 지도자인 셰라즈 아르샤드는 말했다. “신도들 사이에서 안도와 기쁨의 감정이 넘쳐난다. 그 건물이 교회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유럽이 더욱 세속화하고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교회 건물을 이슬람 사원으로 용도 변경하는 일은 지극히 이치에 맞는 처사다.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교회에 나가는 사람 수는 장기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반면 점차 늘어나는(그리고 독실한) 무슬림 이민자들에겐 더 많은 예배 장소가 필요하다.

영국 크리스천 리서치의 전망에 따르면 10년 안에 신앙생활을 하는 무슬림 인구 수가 신앙생활을 하는 크리스천 인구 수를 앞지른다. 영국 성공회는 1600여 곳의 교회(전체 교회의 약 10%)가 남아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였다.

만일 교회 건물들이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야 한다는 현실이다. 극소수 교회 건물은 이슬람 사원이나 시크교 사원으로 사용되지만, 식당·연주회장·창고·아파트로 용도 변경된 교회가 더 많다. 독실한 기독교도들에게는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실용주의가 득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냉혹한 현실은 유럽 전역에서 보인다. 심지어 가톨릭 국가들에서도 성당 미사 참석률은 급락하는 추세다. 프랑스에서는 주일 미사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가톨릭 신자 수가 5%도 안 된다. 체코공화국의 경우는 3%에 불과하다. 남아도는 교회와 성당을 처리하는 방법에 관한 공식 정책은 입장에 따라 크게 갈린다.

가톨릭과 개신교 지도자들의 생각이 서로 다르고, 국가별로도 상이하다. 프랑스와 독일 등 대표적인 나라들의 경우 건축학적 가치가 높은 성당과 교회는 법으로 보호한다.

그러나 점차 많은 교구에서 신도 수가 감소하면서 교회 당국은 사용되지 않는 예배당의 값비싼 유지비를 계속 지출할지, 아니면 헐어버리거나 새로운 용처를 찾아낼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독일 에센주의 가톨릭 교구에서는 현재 약 100곳의 성당이 폐쇄나 용도변경의 운명에 직면했다.

좀처럼 교회에 나가지 않는 젊은 세대에게는 건물 자체를 보존하는 일이 신앙을 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한때 성(聖)바오로 교회였던 영국 브리스틀의 한 건물에는 예비 어릿광대들을 교육하는 서커스 학교가 들어섰다.

유구한 역사의 예배당이었지만 이제는 나이트클럽으로 변한 암스테르담의 파라디소에서는 팝가수 마돈나가 공연하기도 했다. 로마 시내에서는 중세 성당 건물 안에 들어선 인기있는 ‘사크로 에 프로파노’(‘신성하고 불경스러운’) 식당에서 손님들이 즐겁게 식사한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는 한때 방치됐던 성모 마리아 성당이 대규모 개축 공사 뒤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부활했다.

영국 서부의 조용한 도시 첼트넘에서는 19세기에 건립된 성공회 교회 건물 안에 이탈리아 요리점 ‘치찌’가 들어섰다. 치찌의 지배인 피터 파킨슨은 “가끔 손님들의 의견을 들어 보면 건물의 상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때 성찬대였던 자리에는 피자를 굽는 초대형 오븐이 설치돼 시선을 끌지만 그것을 문제삼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물론 이런 세태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역사학자 앵거스 파울러는 이렇게 말했다. “베를린에서는 교회 건물을 불경스러운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방치하기보다는 차라리 헐어버리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파울러는 유럽 도처의 폐기된 교회 건물들을 보존하자는 운동을 벌여왔다. 지난해 체코공화국에서는 대학생들이 정부를 성토하는 가두시위를 벌였다. 정부가 프라하의 고대 유적지에 있는 12세기 성당 성(聖)미카엘을 민간기업에 매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회사는 성당 건물을 비밀 스트립쇼와 테크노 파티를 여는 장소로 사용했다.

유럽 고대 종교미술센터의 지리 페세크 소장은 “그런 식의 용도변경은… 충격적이다. 도저히 용인하지 못한다”며 분개했다. 그러나 항의가 터져나왔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가톨릭 성당 건물의 용도변경에 반대하는 웹사이트 catchcon.blogspot.com을 운영하는 브뤼셀의 크리스 질리브란드는 이렇게 지적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바뀌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진행돼 왔는지 전혀 모른다.”

유럽의 교회와 성당들이 종교·정치 질서의 변화에 희생양으로 전락한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다. 18세기 말 오스트리아제국은 활용도가 떨어지는 성당 수십 개를 폐쇄시켰다. 가톨릭 교회의 권력을 축소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반달리즘’(예술·문화의 고의적 파괴)이라는 용어는 프랑스혁명 당시 가톨릭 교회 건물들을 파괴하는 행위를 지칭하면서 최초로 사용됐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동일한 건물이 상이한 종교의 예배당으로 이용됐다.

스페인에서는 급격히 늘어나는 무슬림 인구가 코르도바에 있는 메즈키타 사원의 공동사용권을 요구한다. 원래 이슬람 사원이었던 메즈키타는 400여 년 전 코르도바시가 가톨릭 군대에 함락된 이래 성당으로 사용돼 왔다.

사용되지 않는 교회가 늘어난 이유는 신앙심의 퇴조 때문만이 아니다. 20세기의 무신론적인 공산정권, 전쟁, 인구구성의 변화 등이 모두 작용했다. 트란실바니아에 있는 웅장한 ‘요새(要塞)교회’들의 경우를 보자. 한때 이 교회들은 현지의 대규모 독일계 주민들의 예배당으로 이용됐다.

이들은 중세 독일에서 루마니아로 이주한 정착민들의 후손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독일계 주민 수는 겨우 몇천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버려진 마을들에는 집시들이 들어와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지 교회당 보존 운동을 벌이는 트란실바니아 트러스트의 칠라 헤게두스는 “집시들은 요새교회를 보존해야 할 정서적 필요성을 못 느끼고 금전적 능력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큰 도움이 안 된다.

“문화부가 나름대로 지원을 해준다. 하지만 가난한 공산주의 체제에서 겨우 벗어난 나라들이 문화유산 보존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기는 어렵다”고 헤게두스는 말했다.

일각에서는 유일한 해결책을 부동산 시장에서 찾는다. 1990년대 체코의 가톨릭 교구 흐라데치 크랄로베는 150개의 사제관을 개인들에게 매각했다. 현재 이 교구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 1000개 성당의 약 절반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 중이다.

성당의 소유권을 지방정부에 이전해 문화적 용도로 활용하게 하는 방안이 선호되지만, 일부 성당을 매각하는 방법도 배제하지 않는다. 체코 문화재 보호청이 발간한 책자에는 복구작업이 절실히 필요한 문화재 700개(성당과 수도원 200여 개 포함)의 목록이 등재돼 있다. 그중 상당수는 체코 전역에서 매물로 나와 있다.

물론 세속주의화 경향이 보편적인 현상은 결코 아니다. 더블린 중심부에 있는 성당 90개 중 일부는 최근 몇 년간 가톨릭 신앙심이 굳건한 폴란드인 이민의 대규모 유입 덕분에 살아남았다. 또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붕괴 이래 1만1000개의 예배당이 신축됐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대럴 잭슨 목사는 “동방정교회 지역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 많은 교회가 복구되거나 신축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폴란드의 경우 오래된 가톨릭 성당들이 직면한 유일한 위험은 신도 수의 급증과 관련 있다. 신도들은 자신들을 수용할 공간이 넉넉한 좀 더 큰 성당을 신축하려고 기존의 유서깊은 건물을 포기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 밀접하게 유지돼온 교회와 국가의 관계 덕분에 금전적인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충분히 이용되지 않는 예배당의 유지 비용을 납세자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프랑스의 대다수 성당(1905년 정교분리 조치 이전에 건립된 성당)은 지방자치단체의 보호하에 있으며 약간의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

덴마크에서는 시민들이 평균적으로 소득의 약 1%를 갹출해 국교(國敎)인 복음주의 루터파 교회의 보존을 지원한다. 물론 교회들은 주일 예배 때도 빈자리가 많지만(평균 출석률이 5%도 안 된다), 아직 폐쇄된 곳은 거의 없다. 교회부 장관인 위르겐 엥마르크는 “덴마크 국민은 교회를 너무 사랑한다. 교회는 문화의 일부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에서 종교의 공간은 축소돼 간다. 사실 다른 종교인들이 교회를 임차해 사용한다고 해도 장기적인 보호는 보장되지 않는다. 세속주의 영향에 물들어가는 현상이 기독교도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클리세러의 무슬림 지도자 아르샤드는 이슬람교도들의 예배 참석률도 떨어졌다면서 “이런 현상은 크게 보면 누구나 다 신앙에서 멀어지는 현상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라면 미래의 세대는 동네에 있는 유서깊은 교회의 존재를 최고급 식당으로만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With TRACT McNICOLL in Paris and KATKA KROSNAR in Pr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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