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비좁고 전기불 꺼 집단참사/대구 나이트클럽 방화가 남긴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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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백평 홀에 탁자 1백개… 통로도 없어/지난달 관할 소방서 점검때 “이상무”/가파른 계단… 대피 어려워
대구 거성관 나이트클럽 방화사건은 가정불화와 도농간 위화감에 불만을 품은 농촌청년의 한순간 흥분이 우발적으로 빚은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
환각조명과 귀가 찢어질듯한 디스코음악의 굉음속에서 이성을 잃은 김씨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자 고객들이 서로 먼저 빠져 나가려고 가파르고 비좁은 출구로 몰리는 바람에 넘어지고 짓밟히는등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변했다.
나이트클럽 입구계단에는 여자핸드백과 옷가지·신발 등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으며 사망자 16명이 질식 또는 압사한 것으로 밝혀져 화재현장의 급박한 상황을 말해 주고 있다.
◇문제점=이번 참사의 원인은 종업원들이 디스코음악과 밴드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구의 문을 닫아둔데다 2개 뿐인 비좁은 출입구에 대부분 술취한 고객들이 이성을 잃고 한꺼번에 몰려들었으며,비상구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홀내부 벽면과 칸막이 등이 모두 합판으로 장식돼있고 바닥이 카핏으로 인화성이 강해 불이 순식간에 건물전체로 옮겨 붙었고,연기·유독가스에 질식한 고객들은 탈출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며 아우성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또 지하실의 구조상 비상구를 설치할 수 없는데다 2개뿐인 출구도 1층으로 통하는 가파른 계단을 타게 돼있어 신속한 대피가 어려웠다.
업주가 많은 고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무대를 제외한 2백여평의 홀에 탁자 1백여개·의자 4백여개를 들여놓아 내부통로까지 잠식한 바람에 고객들의 대피로가 막힌 것도 큰 피해를 부른 원인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더욱이 무대에 불길이 번질때 전기마저 꺼져 암흑을 이룬 홀안에서 손님들이 출구를 찾지 못해 뒤엉키는 바람에 연기에 질식,사상자가 많았다.
한편 대구시는 83년 4월18일 25명이 숨지고 69명이 부상했던 디스코클럽 초원의 집(대구시 향촌동 51)의 화재사고이후 『나이트클럽과 카바레·회관등 무도유흥업소의 허가를 억제하고 기존업소도 소방시설을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으나 관할 서부소방서가 지난달 11일 소방점검결과 특별한 지적사항을 밝혀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특히 지하실의 소방점검 소홀로 인한 제2의 「초원의 집」 비극이 재현된 것이다.
◇화인수사=경찰은 김씨가 결혼 1개월만에 부인이 가출하는등 가정불화로 고민해오다 이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뒤 혼자서 나이트클럽을 찾았으나 종업원들까지 푸대접하는데 격분,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가 인근 태양주유소에서 휘발유까지 구입한 것은 사전에 계획한 범행이 아닌가보고 이점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보상=대구시는 18일 서구청에 사고대책본부(본부장 정충검 부시장)를 설치하고 사상자배상 및 부상자 치료문제 등을 유족들과 협의중이다.
불이 난 농춘빌딩은 지난 9월8일∼92년 9월7일까지 1년간 계약으로 한국화재보험협회에 11억5천만원의 화재보험에 가입해 사망자의 경우 보험료 보상액이 1인당 최고 1천만원까지,부상자는 최고 8백만원씩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대구=임시취재반>
◎유흥·숙박업소 대형화재 일지
▲71.12.25=서울 대연각호텔 화재(1백67명 사망)
▲74.10.17=서울 뉴남산호텔 화재(19명 〃)
▲75.10.12=서울 대왕코너 화재(88명 〃)
▲82.12.29=대구 금호호텔 전소
▲83.4.18=대구 디스코홀 화재(25명 사망)
▲83.10.2=마산 고려호텔 화재(8명 〃)
▲84.1.14=부산 대아관광호텔 화재(38명 〃)
▲88.3.26=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술집화재(9명 〃)
▲89.12.27=경북 달성군 무허가카페서 화재(14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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