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도둑이 집에 와 주인 행세하면 어쩔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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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암리를 아십니까

장경선 글, 류충렬 그림, 푸른책들

192쪽, 8800원, 초등 3~6학년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이 경기도 화성 제암리 주민 30여명을 집단 학살한 '제암리 학살사건'이 배경이다. 교과서나 뉴스를 통해 충분히 접한 사건을 새삼 동화로 펴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역사를 가슴으로 읽게 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등장인물에 감정 이입을 하다보면 역사가 '지식'이 아닌 '체험'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조선에 살고 있는 일본인 소년 나카무라다. 1919년 3월 1일. 전국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다. 나카무라는 조선인들이 이해가 안 된다. 나라를 맡아 달라고 떠넘겨놓고 이제 와서 나라를 되찾겠다며 시위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조선인들의 시위가 점점 격렬해지자 나카무라의 아버지 사사까와 조선인 앞잡이 쌍칼, 끄나풀 김만복 등은 제암리를 쓸어버리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것을 우연히 듣게 된 나카무라는 자신이 연모하던 조선인 여자아이 연화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학살 음모를 막기에는 역부족. 사사까 등은 제암리 교회에 사람들을 가두고 집중 사격을 해 죽인다. 또 증거를 없애기 위해 교회와 마을에 불을 지른다. 결국 부모와 할아버지를 잃은 연화. 그 뒤에서 나카무라는 자신이 어른이 되면 일제가 저지른 죄를 세상에 알리기로 다짐한다.

제암리 현장에는 이름난 열사가 없다. 힘겨운 보릿고개를 지나는 가난한 백성들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놨다. 그래서 더 '체험'이 쉬워질 수도 있겠다. "연화야, 도둑놈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우리를 마구 때리면서 주인행세를 하면 어쩌겠느냐? 참고만 있을래?"란 할아버지의 질문에, 영웅만 정답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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