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승용차 통행규제라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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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재 경부·경인고속도로 극심한 교통체증에 걸려 그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에 있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국가경제와 국민생활 각 부문에 걸쳐 엄청난 불편이 빚어지고 있음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서두르고,그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그 적절한 대책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고 추진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팔에 악성종기가 났다고 해서 수술칼부터 들이댈 수는 없는 것이며 설사 그럴 필요성이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보다 달리 더 좋은 방법은 없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경부·경인고속도로의 체증해소문제도 꼭 마찬가지다. 2인이하 승용차의 진입금지와 같은 극약처방을 하려면 사전에 그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는 확신과 결론이 사회적 합의로 도출되어야 하며 아울러 그에 따라 파생될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갖가지 대책이 먼저 제시되어 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번 교통부가 제시한 방안은 그런 과정이나 면밀한 사후대책의 제시는 전혀없이 「아닌밤중 홍두깨」격으로 불쑥 내민 느닷없는 것이다. 말로는 앞으로 공청회 등으로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했지만 시행날짜·제한시간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실시방침은 이미 정해진 것이고 여론 수렴은 그를 뒷받침할 요식행위로나 삼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이런 독선적이고 행정편의적인 발상이 어디 있는가. 수출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을 해도 되고 수출을 위해선 모든 사람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당장 수출입물자의 수송에는 얼마간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로 인해 그 이상가는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손실이 빚어진다면 그것을 어쩔 것인가.
아무리 고속도로의 체증문제가 심각해도 일의 선후를 가릴 것은 가리고,짚을 것은 짚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동의도 얻을 수 있고 효과적인 대책도 마련할 수 있다.
우리는 정부가 그 구상을 섣불리 강행하려 들어선 안된다고 본다. 출퇴근시민들의 불편,승용차를 생업의 수단으로 하는 사람들이 부닥칠 문제,다른 도로나 교통수단에 미칠 혼란 등에 대한 대책을 충분히 세워 정말 자신이 섰을때 시행해야 한다.
우리가 보기에 근본적인 대책은 역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부·경인고속도로 확장 및 전철 복복선화공사를 최대한 앞당기는 것이다. 현재로선 이들 공사는 이런저런 행정적 태만으로 예정된 공기조차 지켜질 가망성이 없는 실정이다. 왜 이 문제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경부·경인고속도로의 문제가 심각한 걸 이제서야 느꼈다면 이제부터라도 대책논의를 전국민적 차원으로 확대해 중지를 구하고 그것을 통해 합의된 방안을 이끌어내야 한다. 아무런 사회적 논의도,국민의 동의도 없이 정부의 실책에서 빚어진 부담을 몽땅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느닷없는 행정편의적 발상에 우리는 아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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