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인가 건달인가/콜럼버스 재평가논쟁(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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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비판자들 “얼굴도 상륙장소도 수수께끼”/“노예제·질병 옮기고 종족말살”/상륙 5백돌 행사준비 떠들썩/언론·정부 “미국이 있게한 위대한 탐험가”
콜럼버스 상륙 5백주년 기념일(92년 10월12일)을 1년 앞두고 미국과 스페인등 관련국가에서 수십만달러를 들여 벌써부터 5백주년행사를 성대히 치르기위한 준비가 활발한 가운데,요즘 미국에서는 콜럼버스가 영웅인가,형편없는 건달인가 하는 인물 재평가 논쟁이 한창이다.
콜럼버스가 1492년 서인도제도의 산살바도르섬에 상륙,아메리카대륙을 처음 발견한 것으로 통상 알려져 있으나 사실여부에 대한 의문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최초발견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우선 그가 실제로 상륙한 장소를 아무도 모르는 것은 물론,그가 죽은후 묻힌 장소도 알려져있지 않으며 심지어 그의 생김새 또한 명확히 파악되지않고 있다고 지적,콜럼버스는 미스터리의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콜럼버스를 열렬히 존경하는 사람들조차 그가 「신대륙 발견자」라기보다 「우연히 신대륙에 상륙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콜럼버스에 대한 최근의 재조명 작업은 그를 오늘의 미국을 있게한 영웅으로 치켜올리는 주장과 희대의 건달내지 무뢰한으로 치부하는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아메리카 토착민,즉 인디언들에게 있어 콜럼버스는 위대한 발견자가 아니라 침략자다.
미 흑인들에게 있어 그는 최초의 노예소유자였을 뿐이다.
또한 환경보호론자들은 콜럼버스를 위대한 탐험가가 아닌 악명높은 파괴자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와 달리 콜럼버스 기념행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 공용TV방송인 PBS가 「콜럼버스와 발견의 시대」라는 7시간짜리 다큐멘터리프로그램을 최근 방송한데 이어 콜럼버스상륙 4백99주년기념일인 12일 워싱턴시에서 공식행사가 개막된다. 이 행사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각종 공식·비공식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워싱턴의 스미소니언박물관은 오는 20일 박물관사상 단일전시로는 최대가 될 「변화의 씨앗」전시회를 통해 설탕·옥수수·감자·질병,말(마)등의 다섯가지사물이 콜럼버스에 의해 미 대륙에 상륙한 이후 나타난 변화를 알아보는 행사를 가진다.
한편 콜럼버스비판그룹도 12일 아메리카 토착 인디언들이 주최하는 1492년 이후 사망 전몰인디언에 대한 추모행사를 필두로 내년까지 대대적인 반콜럼버스관련행사를 벌인다.
더욱이 일부 인디언단체들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향해 대서양을 항해했던 당시의 니나호,핀타호,산타마리아호등 범선 선단의 복제선박 일단이 내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미국동부해안에 상륙할때 이를 사전봉쇄할 것으로 알려져 유혈사태까지 우려되고 있다.
『낙원의 정복』이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 커크패트릭 세일씨도 콜럼버스가 잔인하고 욕심많은 인간으로 항해가로서의 자질도 형편없는 무자격자라고 매도하고 『신대륙발견이후 서양문화가 미국대륙을 지배하게된데 대해 재인식이 필요하며 특히 이 때문에 소멸된 인디언문화의가치도 재조명돼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인디언들의 반감을 이유있다고 대변하고 나섰다.
한편 미교육계의 복합문화주의자들도 콜럼버스가 미 대륙에 질병,노예상태,소유권박탈,종족말살 등의 악행을 저질러왔다는 인디언들의 주장을 인정해야하며,따라서 5백주년을 경축할 것이 아니라 단지 기념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사회교육위원회도 콜럼버스에 대한 업적을 평가절하하는 새지침서를 계획하고 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발견 5백년후에 준엄한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셈이다.<윤재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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