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해태 먼저 웃었다|한국시리즈 1차전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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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적은 안타(6)로 9득점을 올린 해태의 집중력과 강타가 돋보였다. 반면 빙그레는 해태보다 많은 안타(8)를 때리고도 찬스마다 장종훈, 이강돈 등 중심타선이 불발, 경기를 아깝게 놓쳤다.
해대 선발 선동렬은 시리즈 첫 등판 이어서인지 중압감 때문에 투구가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선은 고비에서 결정타를 허용하지 않는 노련한 피칭으로 위기를 넘겼다.
빙그레는 백전노장 한희민, -유승안 배터리를 투입했으나 2회말 한이 해태 4번 박철우에게 4구를 허용하면서 흔들리기 시작. 결국 감독의 예상보다 일찍 모두 물러나면서 경기의 주도권을 해태에 넘겨주게 됐다. 한희민은 박철우와의 대결에서 회심의 안쪽 슬라이더가 볼로 선언되자 낙담, 해태 6번 한대화 에게 2점 홈런을 얻어맞았다.
홈런을 맞은 것은 한의 실투라기보다 한대화의 타격이 훌륭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러나 한은 홈런을 맞은 후 백전노장답지 않게 흔들렸고 이순철에게 4구와 도루를 허용한 후 1루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자존심을 살리려 장채근과 정면승부를 벌이다 적시타를 얻어맞아 강판 당하고 말았다. 1회말 떠오르는 볼과 빠른 볼로 연속3타자를 잡아 호투가 예상되던 한이 2회말 갑작스런 난조를 보인 것이다.
이후 빙그레 김영덕 감독은 한을 빼고 그동안 플레이오프 등에 출전치 않았던 이상군을 스토퍼로 내보내 일단 불을 껐다.
그때까지 스코어는 3-1.
선동렬이 등판한 상황이어서 2점차는 다소 부담스러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경기를 포기하는 인상은 아니었다.
4회초 빙그레는 결정구가 없어 불안하던 이를 빼고 장정순을 마운드에 투입, 추격의 의지를 높였다.
6회초 빙그레는 무사 1, 2루의 호기를 맞았으나 장종훈의 타구가 수비 방해냐 아니냐는 승강이 속에 후속타 불발로 기회를 무산시켜버렸다.
이 찬스를 놓치면서 김감독은 「오늘 경기는 운도 따르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 돌연 호투하던 장을 빼고 김대중을 마운드에 올렸다. 앞으로 있을 6차례 경기에 대비한 것 같았으나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오늘 경기가 시즌 중 어느 한 경기라면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한판은 7전4선승제에서 승부를 가름할 수도 있는 귀중한 한판이었고 선의 구위는 6회 초부터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경기 후 해태 김응룡 감독도 『빙그레가 무슨 생각으로 투수를 5명씩이나 바꿨는지 모르겠다』며 장정순이 계속 마운드를 지켰더라면 승부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보다 감독이 더 긴장한 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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