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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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세기 최대의 정치가였던 윈스턴 처칠이 서거하자 뉴욕 데일리 뉴스는 이런 명문의 기사를 실었다.
『그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그리고 연합국 진영의 사람들중에서 가장 강인한 심장밖에 제공할 수 없었던 때가 아마도 그에게는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눈빛 날카로웠던 히틀러도,배반한 동맹자 스탈린도 그를 업신 여기지 못했다. 그는 진정한 애국을 위해 살았고,그리고 죽었다.』
피와 땀과 눈물은 바로 처칠이 2차대전이 한창인 1940년 체임벌린으로부터 전시내각을 인수하고 의회에서 한 연설의 한 구절이다. 백척간두에 선 조국의 운명을 눈앞에 두고 국민들에게 용기와 헌신을 호소한 이 연설은 결국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애국심이란 인간이 자기가 소속하고 있는 국가에 대해 지니고 있는 애정과 헌신이다. 그렇다고해서 애국심이 모두 거창하고 어려운 것은 아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애국심이다. 그것을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해인가 평양 칠성문앞에서 한 연설이다.
『나라일을 하는데는 여러가지가 있소.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로 나라일을 하고,김을 매는 사람은 호미로 나라일을 하고 있소. 그런데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나라일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시방 귀를 가지고 나라일을 하고 있습니다.』 많이 듣고,많이 보고 많이 배우라는 얘기다.
어제날짜 중앙일보의 「그래픽뉴스」를 보면 일본의 두기관이 조사한 주요국 국민의 애국심 비교표가 실려 관심을 끌었다.
「나라를 위해 싸울 용의가 있는가」라는 설문에 한국인은 85%가 「있다」고 대답해 단연 1위다. 그런데 미국은 70%로 5위,일본은 10%로 10위를 차지했다.
일제의 침략과 동족상잔의 비극적 체험에다 오랜 독재정치에 시달려 온 한국인의 애국심은 새삼 의심할 바가 없다. 그리고 비록 월남전은 실패했지만 두차례의 대전을 승리하고 최근 걸프전마저 이긴 미국의 영웅주의적 애국심도 그런대로 수긍이 간다. 그러나 요즘 다시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애국심에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걸프전도 전비로 충당했듯이 전쟁이나 애국을 모두 돈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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