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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가장 차동헌-가난에 울지 않은 "돌풍의 10대 페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한국사이클 10대 선풍의 기수로 떠오른 차동헌(19·한국통신)은 요즘 세태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효자선수」다. 아버지(차영도·83년 작고)를 일찍 여읜 탓에 홀어머니(이만우·49)를 모신 가장으로서 거의 효성은 각별하기만 하다.
훈련 틈틈이 파출부 일을 나가는 어머니 안부를 묻는 열성도 그렇거니와 한창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임에도 월급(40만원)을 단 한 푼도 축내지 않고 꼬박꼬박 송금하는 정성 또한 대견스러울 정도라는 게 전성국 한국통신 감독의 귀띔이다.
지난 8월 제15회 아시아사이클선수권대회(북경)는 거의 성장가능성을 여실히 입증해준 확인 무대. 이 대회에서 차는 4km 개인 추발·4천m 단체추발·50km 선두 경기 등 3개 종목을 석권, 일약 한국사이클의 기대주로 뛰어올랐다.
1m70cm·68kg의 다부진 체격, 특히 타고난 담력에다 지구력이 뛰어나 벌써부터 10대 돌풍의 선두주자로 꼽혀온 터였다. 당초 도로선수로 입문했으나 경기 동화고2년 때인 지난 89년 트랙으로 전향, 놀라운 기량향상 속에 부동의 위치를 다져가고 있는 중이다.
주니어 대표출신으로 올 봄 고교졸업과 함께 한국통신에 입단, 본격수업을 쌓게 됐고 모두 세 차례의 선발전을 거쳐 비로소 지난 5월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결국 이번 북경아시아선수권대회 성적은 국가대표로 첫 출전해 이룬 쾌거인 셈.
선수로서, 소년가장으로서 거의 사이클인생은 숱한 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경기도 미금시 소재의 양정초교 4년 때 남달리 사이클에 소질을 보였으나 82년 당시 중장비 기사로 일하던 부친을 따라 서울 강남초교(상도동)로 전학하게돼 소년 건각의 꿈은 자칫 무산되는가 싶었다.
그 이듬해 아버지가 돌연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거의 가정은 삽시간에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2남1녀의 가계는 전적으로 홀어머니가 떠맡아야 했고 손위 누나(현정·20)와 장남인 차는 야채 행상 하는 어머니를 도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신문배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차선수가 사이클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85년 고향인 미금시의 동화중2년으로 전학하며서부터. 차의 페달 밟기를 눈여겨본 김옥한 지도교사가 전격적으로 발탁, 사이클 팀에 입단시킨 것.
이후 차는 주린 배를 움켜잡으면서도 하루 6시간씩 맹훈련을 거듭, 각종 전국대회를 휩쓸면서 고교 최고의 기대주로 각광 받기 시작했다. 89년 7월 주니어 대표로 소련 모스크바 대회에 출전했으나 차는 쓴 체험을 맛봐야 했다. 고질이 되고만 무릎통증도 차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것.
그러던 차에 한국통신으로부터의 입단제의는 낭보였다. 차의 가능성을 높게 점친 전성국 감독은 아직 세기가 다듬어지지 않은 차를 받아들여 각별히 조련, 지난 7월 비로소 첫 결실을 보게 됐다.
제8회 대통령기 전국대회에 출전한 차가 그동안 난공불락으로 남아있던 4km 개인추발에서 4분38초44로 역주,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주 종목은 역시 4km 개인 추발과 선두경기.
『이왕 사이클에 입문한 이상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정진해 이름을 빛내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는 「돌쇠」차동헌의 사이클 인생은 아시아선수권 3관왕을 이룬 지금부터가 바로 시작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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