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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황혼이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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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올해로 팔순인 최모 할머니는 60년 가까이 이어 온 결혼생활을 끝냈다.

2005년 남편 김모(79)씨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1948년. 하지만 2년 뒤 6.25 전쟁이 터지면서 최씨의 고생이 시작됐다고 한다. 최씨는 이혼을 청구하는 소장에서 "단칸방에서 시부모와 함께 7남매를 키워 왔지만 남편은 오히려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왔다"고 주장했다. 20세에 서둘러 결혼하느라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최씨에게 남편은 "무식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고 한다.

남편은 또 최씨 몰래 딴살림을 차리고 두 명의 딸까지 낳은 뒤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남편은 특히 최씨가 낳은 7남매들이 결혼할 때마다 동거녀에게 인사를 가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남편은 사업으로 돈도 많이 벌었지만 최씨에게는 인색했다. 동거녀에게는 매달 50만원의 생활비를 주면서도 대가족과 함께 사는 최씨에겐 30만~40만원만 줬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두 집 살림을 계속하던 남편은 70세인 97년 서울 마포구의 3층 건물을 동거녀에게 넘기고 관계를 끊었다. 하지만 곧바로 또 다른 여인과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이를 따지는 최씨에게 폭언을 한 뒤 동거녀 집으로 가버린 채 생활비 지원마저 끊었다고 한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는 "최씨가 주장한 이혼청구 소송 이유 중 상당 부분이 인정된다"며 "남편 김씨는 최씨에게 위자료 1억원과 부부재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8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한편 65세 이상 고령자들의 '황혼 이혼'은 2005년 2612건을 기록, 전체 이혼 건수의 2%를 차지했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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