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핵정책,남북한관계 전기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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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가 이념적인 분쟁과 갈등의 역사에서 전기를 맞았던 것처럼 핵무기에 의한 갈등과 공포의 역사도 전환점에 이른 것 같다.
단거리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선언은 모색단계의 새로운 평화질서를 다지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데서 획기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의 선언이 가져다준 희망은 비단 핵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데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당장 국제관계에서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파급하게 될 효과 또한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볼 수 있게 했다는데에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전망은 특히 아직도 냉전의 틀에서 크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정세와 관련해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개선의 기미를 보이는듯 하면서 아직도 획기적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남북한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 대화에서 갈등을 빚은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군사적 긴장완화문제,그중에서도 한반도의 핵무기 문제는 가장 커다란 장애로 되어왔다.
북한측이 남한의 주한미 핵무기문제를 구실로 여러가지 조건을 붙여 대화를 어렵게 해왔던 만큼 이번 부시 미국 대통령의 조치로 그러한 장애는 자연스레 해소하게 된 셈이다. 아울러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던 핵사찰문제의 장애도 제거될 수 있게 됐다는데서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부시 대통령의 이번 선언으로 북한이 핵사찰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남한으로부터의 핵무기 철수문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이번만은 국제적인 의무를 준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이 서두르고 있는 일본과의 수교협상은 물론,미국과의 접촉노력에 커다란 진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신의를 회복하고 다각적인 외교관계를 가져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길도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일말의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북한이 또다른 조건을 붙여 그러한 기대를 저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미국 정부는 이번 조치를 발표하며 단거리 핵철수조치가 한반도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밝히면서도 핵우산은 그대로 계속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주장이 바로 핵우산의 완전제거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불사용 약속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왔다. 그러나 미국의 핵우산은 실제로 북한이 핵도발을 하지 않는다면 전연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거론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로서는 오히려 미국의 핵정책변화에 따른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바뀌게 된 만큼 남북한이 새로운 상황에 맞도록 현실적인 대응방안을 찾기위해 대화를 서두르고 협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이 의혹을 받고 있는 핵무기개발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북한이 핵문제까지 포함해 한반도 전체의 군비통제문제를 폭넓게 논의해 가면서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선언은 모든 나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안정적인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북한도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반도의 안정은 물론 국제적인 평화정착에 노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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