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제 겨우 효도 할 수 있는데 왜 안 계시는 건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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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마누라.나 오늘 술 한잔했소.공무원 생활 25년 만에 과장으로 진급했는 데 축하해주는 마누라도 없어 더욱 서운하고 허전하네.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구려."

광주광역시립묘지를 운영하고 있는 광주시도시공사 영락공원이 유족들의 사연을 모아 '하늘나라에 쓴 편지'를 최근 발간했다.

영락공원 측은 2004년 초부터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왔으며 이번에 200여통의 사연을 담아 책으로 냈다.이름은 사생활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했다.

이들 편지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유족들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그래서 더욱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두 딸을 둔 어머니는 먼저간 남편에게 다짐한다. "이젠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당신.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하는 지 가르쳐주지도 않고 가버린 당신이 너무 밉다. 하지만 우리 딸들을 위해서 잘 견딜께. 당신을 다시 만나는 날까지. 정말 당신을 좋아했고 너무 너무 사랑했어.아니 지금도 사랑해"

또 다른 부인은 남편에 대한 믿음을 전하고 있다."자식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당신 생각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때가 있소. 신학기라 애들 학자금이 장난이 아니에요. 한명만 서울로 보내도 힘들다고 난린데 당신없이 둘이나 서울로 보내니깐 정말 너무 힘들어요. 여보, 내가 힘내도록 옆에서 충전을 시켜 주세요."

서울에 사는 딸은 교사로 임용된 날 아버지 묘소로 달여왔다. "아빠 저 드디어 교사가 되었어요.아빠가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시던 둘째 딸이 정말 교사가 됐어요.이제야 겨우 효도다운 효도를 할 수 있는데 아빠는 왜 안 계시는 건지…어머니께 잘 할래요.아빠도 그곳에서 여기 걱정일랑 하지마시고 편하게 지내세요."

영락공원에 어머니를 모신지 3개월 된 막내아들도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 후회를 한다."어머니 생전에는 그렇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가신 뒤로는 형제들끼리 자주 모이고 있습니다.어머니의 빈 공간을 채우고 싶어선가 봅니다.살아생전 늘 하셨던 말씀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다시오면 안되나요.저 막내 못다한 효도 다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봅니다.엄마 엄마 엄마 불러 봅니다.사랑합니다.영원토록."

20살 딸을 여읜 아버지는 딸 생일날 편지를 썼다.그는 "보고싶고 그리운 딸아.네가 떠난 지 142일 되는 날이다.너 있는 곳에 내가 있을 수 있다면 나 있는 곳에 네가 있을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무엇을 더 욕심낼까.가슴 저미는 아픔을,목이 터져오는 설움을 남몰래 가슴 속에 묻는다"고 했다.

광주시도시공사 이희옥 사장은 "이들 편지는 부부와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삶을 돌아보게 한다"며 "그리움과 사랑을 가슴에 담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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