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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뺨치는 '북핵' 외교 드라마

중앙일보

입력

김정일 최후의 도박
후나바시 요이치 지음, 오영환.박소영.예영준 옮김
중앙일보시사미디어, 648쪽, 2만2000원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방북부터 시작해 2006년 7월이 북한 미사일 위기까지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이면외교를 일본 아사히 신문 대기자가 파헤친 책이다. 고급 정보라는 씨줄에 사람 얘기라는 날줄을 촘촘히 엮어 깊이와 재미를 두루 갖췄다. 북핵 1차 위기를 다룬 '두개의 코리아'와 2000년도 김대중-김정일 평양 회담을 다룬 '남북정상회담 600일'을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나란히 세워둘 만하다.

이 책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상당수의 고급 정보를 담고 있다. 두 가지만 꼽자면, 2002년 봄 미 중앙정보국(CIA)은 파키스탄과 북한의 정보당국이 주고받는 비밀 무선 통신을 도청하는 데 성공했다. "버찌 스무 상자를 주문한다" "버찌 스무 상자가 도착했다"는 내용이었다. CIA는 문제의 '버찌'가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라고 해석했다.(185쪽)

또 2005년 9월 베이징에서 열렸던 4차 6자회담이 '9.19 공동성명'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파행으로 치달은 이유도 밝혀냈다. 537~538쪽에서 그 원인이 6자회담 폐막식장에서 백악관 강경파의 지시를 받은 크리스토퍼 힐차관보의 폐막성명과 김계관 북한 대표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었다는 흥미로운 비화를 소개하고 있다. .

'고농축우라늄(HEU)' '균형자론' '납치문제' 같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주제를 '사람 얘기'를 통해 재미있게 풀어가는 것은 또다른 장점이다. 책 첫머리에 등장하는 일본 외무성 관리와 미스터 엑스(Mr.X)로 알려진 북한 군부 인사가 막후 채널을 가동해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을 협의하는 얘기는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한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전현직 관리 158명과 전문가 수십 명을 인터뷰 했다고 한다. 또 현직 기자들이 번역을 한 덕에 문장이 평이한 것도 장점이다.

옥에 티도 있다. 저자가 대작을 쓰겠다는 욕심을 내는 바람에 책이 뚱뚱해졌다. 5장 '로슈코프 방북' 과 12장'김정일의 남순(南巡)'은 없애거나 대폭 줄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또 북한의 정치상황을 외무성=개혁파, 군부=보수파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설명 한 것도 아마추어적인 분석이다.

후나바시는 에필로그에서 현재 우리가 겪고있는 2차 북핵 위기를 "북한 체제의 위기와 동북아의 상호 불신이 겹친 중층적 위기"라고 규정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6자회담같은 다자간 평화의 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북한 핵위기의 1차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충고다.

조인스닷컴(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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