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노교장 대질신문(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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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제가 칼을 들고 들어간 것에 대해선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칼을 책상위에 놓아두었을 뿐 교장선생님의 가슴에 칼을 댄 적은 없지 않습니까.』
『무슨 소릴…. 이선생이 내 가슴에 칼을 대고 우리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며 협박하지 않았습니까.』
16일 오후 1시 서울 남부경찰서 조사계.
서울 독산동 두산국교 이은주 교사(28·여)와 강용일 교장(64)이 마주앉아 가시돋친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한쪽은 86년 대학을 졸업,『평생을 어린이들과 함께 하겠다』며 교육에 뛰어든 미혼의 여교사. 다른 한쪽은 45년의 교단 생활을 거쳐 내년 정년퇴임을 앞둔 우리나라 교육사의 산 증인.
두 선생님을 고소인·피고소인이란 「운명적 관계」로 만든 것은 11일 오후 이교사가 칼을 들고 교장실로 찾아간 「사건」이 발단이 됐다.
『저는 교장선생님이 시국선언서명 철회를 요구하며 15년간 중풍을 앓아온 어머니를 학교로 부르거나 전화를 통해 더이상 괴롭히지 말라는 뜻에서 자해까지 해서라도 항의하려 했어요.』
『이선생님의 어머니한테 그런 것은 선도를 협의하자는 뜻이었어요. 그 일로 어머니가 쓰러지지도 않은 것을 확인까지 했어요.』
두 선생님은 끝까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교장선생님을 다시 볼지 모르지만 이번 일을 떠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이 일로 저를 아껴주시는 주위의 동료·가족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해요.』
『교육자답게 거짓말하지 않는 올바른 인간이 되세요. 사회를 어지럽히는 교육자가 후손에게 뭘 가르치겠다는 겁니까.』
팽팽한 긴장관계는 2시간동안 계속 됐지만 평행선은 끝이 없었다.
이 사건은 이날밤 이교사가 특수협박혐의로 구속됨으로써 1라운드가 끝났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스승」들조차 인식차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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