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물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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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추석이 며칠앞으로 다가왔다. 추석은 우리 전래의 최대 민속명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운 추석빔을 차려입고 고향을 찾아갈 가벼운 설렘으로 나름의 추석준비를 서두른다. 조상에 차례를 올리고 아침이슬 풀섶을 헤치며 성묘하는 가운데 새삼 자신의 뿌리를 확인한다.
또 오랜만에 만나는 일가친척·고향친지들과 정담을 꽃피울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이기도 하다. 추석은 그래서 아직도 산업사회속의 도시인들에게 향수와 시골풍경에 젖어보고픈 자연회귀의 정감을 갖게하는 「기다림의 날」이다.
그러나 마냥 즐겁기만 해야할 기다림의 날을 준비하는 발걸음들이 가볍지 않다. 추석물가 때문이다. 다락같이 오른 물가가 추석차례상을 차리고,아이들에게 추석빔을 해주고,피치못할 곳에 선물해야할 가계를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작년 추석에 6천5백원하던 쇠고기 한근값이 이번 추석에는 9천5백원으로 올라 있다. 차례상에 꼭 올려야할 조기도 보통것이 5천원에서 7천원으로 뛰었다.
대한상의와 물가협회 조사에 따르면 배는 장십랑 상품 한개가 작년 추석때보다 66.7%나 오른 1천5백원.
고물가에 울상이 돼버린 주부들은 추석장보기가 겁난다고 아우성이다.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푸념들이 이구동성으로 쏟아지고 있다. 4대봉사를 하는 어느종가집 며느리는 궁리끝에 넉상을 차려오던 차례상을 두개로 줄여 보자는 남편의 제의에 솔깃하기도 했지만 가문의 체통을 위해 그대로 하기로 했다고 한다.
추석의 신명을 풀죽게하고 있는 또하나의 기분나쁜 소식이 있다. 과소비풍조 속의 외제병과 수입 제수품이다. 조기·대구 등의 생선류와 호두·잣 등의 과일류,고사리 등의 나물류까지 유통마진을 노린 마구잡이수입으로 차례상에 본의 아니게 외제를 올려놓게 됐다.
일부 부유층에서는 한벌에 1백만원 이상씩하는 고급 수입외제옷을 추석빔으로 사들인다는 것이다.
옛날에도 추석때나 음력설때는 물가가 조금씩 오르긴했다. 한때 「추석물가 단속반」이라는 것까지 있었지만 올해처럼 추석물가때문에 시름에 잠길 때는 별로 없었던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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