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담배꽁초 투기 단속 백태

중앙일보

입력

#.장면1
지난 2월 2일 오후 5시쯤 강남구 역삼동 시티극장앞.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던 20대 후반의 남자가 무심코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다 구청 단속반에 적발돼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았다.

그는 "담배꽁초를 무단투기한 것은 잘못했으나 사전 예고도 없이 단속을 하느냐"며 항의하다 거부당하자 순식간에 뒷골목으로 줄행랑쳤다.

#.장면2
같은날 같은 장소에서 1시간전인 오후 4시쯤 가로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운뒤 담배꽁초를 도로에 버린 30대 중반의 여성이 적발돼 과태료 부과 사실을 알려주고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자 "창피하다"며 빨리 과태료 고지서를 발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장면3
지난 2월 12일 오후 5시쯤 지하철 강남역 7번 출구앞에서 담배꽁초 무단투기로 적발된 20대 초반의 남자는 "아르바이트를 위해 강남에 왔기 때문에 단속 사실을 몰랐다"며 "아르바이트 수당이 하루 3만원인데 5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됐다"고 선처를 호소했으나 거절당하자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 한 개비에 5만원?

강남구가 지난달부터 담배꽁초 무단투기와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있다.

담배꽁초를 무단으로 버리다 적발되면 5만원의 과태료를 물어내야 한다.

강남구는 담배꽁초 단속을 위해 하루 평균 250여명의 공무원을 단속반으로 투입하고 있다.

전체 구청 공무원수가 1330여명이니 토·일요일 휴일을 제외하고 주중에 매주 한번씩 단속 현장에 투입되는 셈이다.

단속시간도 특별히 정해 진 것이 없다.공무원들이 자신의 업무 시간을 조정해 단속 시간을 자율적으로로 정한다.

강남구청 직원 신모씨는 " 낮시간때는 물론 퇴근후 야간에 단속 나갈때도 많다"며 "단속 건수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매주 실·과·동별로 실적이 보고되는데 허탕치고 사무실로 들어갈 수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단속 기한도 특별히 정해진 바 없다.길거리에 담배꽁초가 사라지고 기초질서가 잘 지켜지는 강남구청을 만들때까지 지속적으로 단속하겠다는 것이 맹정주 구청장의 생각이다.

이같은 집중 단속으로 불과 45일째인 지난 14일 현재 1만1154건이 적발됐다.

부과된 과태료도 5억490만원이나 된다(부과건수와 부과금액이 차이가 있는 것은 일부 차량 투기의 경우 현재 청문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

단속 공무원들이 말하는 단속 주민들의 반응도 천태만상이다.

'봐달라고 요청하다 거절당하면 도주하거나 과태료 고지서를 훼손하는 무지막지형','다시는 안그럴테니 한번만 봐달라는 읍소형','담배투기는 잘하는 일이나 과태료가 비싸다는 엄살형','과태료 부과에 순순히 응하는 순종형'등등….

공무원 김길주씨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20대 초반의 딸과 같이 걸어가다 담배꽁초를 무단 투기한 50대 후반의 남자를 적발했을때 얼굴을 붉히며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단속 현장을 지켜보던 60대 남자는 "요즘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다 태연하게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며 "과태료 금액을 20만원이상으로 올려서 따끔하게 처벌해야 다시는 버리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남구청의 단속 행태에 반발하는 주민도 있다.

역삼동에 산다는 주민 장모(34.자영업)씨는 "담배꽁초 무단투기를 단속하겠다는 구청의 방침에는 이의가 없으나 사복을 한 공무원들이 갑자기 나타나 단속하는 것은 실적 올리기 위주의 함정단속이다"고 지적이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 관계자는 "구청은 본격적인 단속에 앞서 지난해 11월부터 12월말까지 2개월동안 전광판과 구청소식지 등 다양한 홍보매체를 통해 주민은 물론 강남구를 생활권으로 하는 직장인.운전자에게 계도활동을 펼쳤다"며 해명했다.

맹정주 구청장은 "기초질서 지키기는 강남구를 명실상부한 선진 지자체로 가꾸어 가는 데 필요한 의식 개혁 운동이다"며 "쾌적하고 살기좋은 강남구를 만드는데 구민들이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프리미엄 홍창업 기자 hongup@joongang.co.kr
사진=프리미엄 이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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