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략 부품도 중국 수출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은 국가기밀 유출을 우려해 첨단 부품의 대(對) 중국 수출을 금지해 왔다. 지난해 7월에는 일반적인 계측기구와 민간 항공기 부품은 물론 특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해양 설비 등을 포함한 47개 제품과 부품을 새로운 수출 통제품목으로 추가했다.

유럽 기업들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유럽의 다국적 항공기 제작사인 에어버스가 중국 대륙에 깊숙이 진입했다. 철도 관련 부품을 만드는 독일계 회사들도 재미를 보게 된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이러다간 중국의 거대 시장을 유럽에 다 빼앗길 것이라며 자국 정부를 압박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런 주장을 받아들였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가 금지하고 있던 철도운행 시스템 관련 제품과 일부 항공기 부품의 중국 수출을 허용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수출이 허용되는 정확한 품목 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런 부품은 중국에 수출해도 미국의 군사 안보나 우주항공산업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한 관리도 15일 "관련 부품들이 중국의 미사일이나 인공위성 등 첨단무기 개발이나 기능 향상에 특별히 도움을 준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로 미국의 하니웰은 중국 철도부가 구매 의향을 표시한 20여 개 철도계측 시스템을 팔 수 있게 됐다. 보잉사는 민간 항공기 부품의 생산이나 측량과 관계된 부품 및 기술을 판매할 예정이다. 이번 조치와 관련, 홍콩의 문회보(文匯報)는 "미국 기업들의 돈벌이가 '중국 위협론'까지 잠재우는 힘을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군사용으로 전용 가능성이 있는 첨단 제품을 중국으로 수출할 때는 국무부.국방부.에너지부.상무부 등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허가를 받도록 해왔다. 지난해 7월 미 상무부가 수출금지 품목을 늘리자 미 상공회의소(AMCHAM).전미제조자협회(NAM).전자산업협회(EIA) 등 24개 기업단체가 공개 편지를 보내 수출 통제 조치를 취소하거나 완화하라고 요구했다. 기업인들은 이 편지에서 "미국이 대중 수출을 금지한 품목의 대부분은 중국이 이미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도매상협회 관계자도 "부시 행정부의 대중 수출 금지 조치는 거대한 시장에 대한 미국 기업의 접근을 막을 뿐 아니라 미국 안보에 별다른 도움도 주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상무부가 전문가들과의 협의를 거쳐 철도 및 항공기 관련 첨단 부품에 대한 통제 조치를 완화한 것이다.

워싱턴.홍콩=이상일.최형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