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진보정치 깃발」가을에 꽂겠다/새 정당 선언 김동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인물중심 아닌 평등이념 정치 추구/끼리끼리 어울리는 옛 정치인 환멸
「진보정치 깃발론」을 내세우며 정치참여를 선언했던 김동길 전연세대교수가 마침내 올가을 그의 「정치세력의 깃발」을 꽂겠다고 밝혔다.
약 두달전 본보와의 인터뷰(6월27일자)에서 ▲토지의 국가관리 ▲완전한 금융실명제실시 ▲정치에서의 「검은돈」제거를 이념으로 하는 새로운 정당의 창당의사를 밝혔던 김교수는 그러나 최근 일부 소문이 나돈 구야당정치인들과의 신야당창당설은 단호히 부인했다. 그들의 정치하는 방식을 인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인물중심의 정치행태에 신물이 난듯하며 새로운 흐름,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는 정치를 구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대뜸 쿠데타의 후유증을 앓고있는 고르바초프 얘기를 먼저 꺼냈다.
『고르비라는 사람은 그 자체가 소련과 맞먹는 인스티튜션(제도)이에요.
죽지 않는한 그는 복귀하게 돼 있었어요. 소련 국민들은 배는 고파도 자유의 맛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는 말이오.』
­우리나라의 「역사의 시계」는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자유의 가치에 대한 존중은 확고해지지 않았습니까. 소련식 군부 쿠데타는 더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봐요.
이제 우리 역사는 평등가치의 확장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북한과의 통일운동은 이점에서 역사의 발전이자 필연입니다.
내가 평등가치를 실현하려는 이념정치의 깃발을 꽂으려는 것도 조국역사가 이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얼마전 김옥선·유갑종 전의원등과 함께 신당을 창당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그들을 사적으로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소. 다만 그들은 정치를 하자면서 어떤 정치를 할지,어떤 이념을 내세울지를 말하지 않고 온통 사람얘기만 하더군.
김아무개는 이래서 안된다. 이아무개는 저래서 안된다….
정치인들이 대체로 「의견을 묻는 정치」를 하는게 아니고 「누가 대통령이 돼야한다」는등 개인의 친소에 의한 감정정치를 하는 것 같아 환멸스러웠어요. 기성정치가 늘 분열하는 이유를 알 것 같더군요.』
­그들에게 뭔가 언질을 주었으니 정당을 같이한다는 말이 난거 아닙니까.
『들어보시오. 약두달간 미국서 강연여행을 하다 8월10일 귀국했는데 한 정치인이 전화하더니 「점심 한번 사겠다」「반드시 나부터 만나야 한다」하더라구요.
그래 둘이 만났는데 「한국정치가 잘못됐으니 바로 잡아야 할 터인데 내가 계획이 있다」고 하길래 「좋은 얘기」라고 그랬죠. 당신들과 신당을 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를 분명히 하지않은게 잘못일까요.
끝나고 나오는데 그분이 미리 부른 기자들이 나한테 두어마디 물어보더니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더군요. 허허…. 그분이 기자들을 데리고 나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지만… 정치에 만정이 떨어집디다.』
­이념정치를 하려한다면서 정당을 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이념으로 움직이는 정당들이 없으니 하는 말입니다. 나는 「정치세력화」라는 말을 쓰고 싶어요.
사회불평등을 도덕적으로 고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같이 사는 운동」을 국민운동차원에서 벌이겠어요.
같이사는 운동을 시민·사회운동으로도 벌여나가고 정치차원에서는 정치세력화운동으로 해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걸 정당이라고 볼지 모르지만….』
­기존의 정치조직들과 다른점이 있을까요.
『민자·신민·민주당의 보수 3개 여야정당들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서로 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있어요. 민중당은 좀다르지만 말이오.
자유없는 시절엔 이념이 없더라도 야당은 뭔가 달랐어요. 하지만 이젠 차이가 없어졌어요. 여당도 돈많이 쓰고 야당도 돈먹고…. 그래서 정당기피증이 생기는거 아뇨.
「같이사는 운동」은 나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자본주의중에서도 가장 타락하고 천한 모습을 고쳐간다는 이념운동이오. 자신을 표현할 방법과 기회를 찾지 못해 그렇지,이 이념에 같은 생각을 하는 진보적 국민들이 많다고 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과 이 정치세력화 운동을 펴는겁니까. 그 조직과 내용은 언제 가시화됩니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념의 윤곽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14대총선에 나서야 하니까 선거 1백일쯤전인 10월말이나 11월초에 깃발내용을 다 드러내게 될거요.
깃발을 만들어 꽂아 놓으면 그 다음엔 이를 보고 모인 사람들이 움직여 가야지요. 우리의 조직은 성격상 한 보스를 정점으로 사전에 핵심 그룹을 구성해 급조정당을 만드는 방식일 수는 없는거요.
같은 뜻을 가진 모든 사람사이의 평등한 네트웍,느슨하고 자발적인 인간관계망 같은 거지요.』
(김교수는 이미 만났거나 만나고자하는 70년대 학생운동권이었던 이신범씨와 장기표씨등을 거명했다).
­김교수의 생각과 구상이 현실정치와 너무 동떨어진 관념론·이상주의라는 비난이 적지 않습니다.
『한번도 그래본 적이 없는 조국의 정치사요. 「돈없이 정치 못한다」는 얘기만 있었지,이를 넘어서 보려는 시도가 언제 있어 왔습니까.
지금까지 정당이라는게 군사쿠데타에 의하거나 관제야당 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당이었죠.
이제 신념이 현실에 영향을 주는 정치가 있어야 해요. 없어서는 안될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기 때문에 내가 합니다. 열매가 맺어질지는 그다음 문제요.』
­토지의 국가관리라는 김교수 생각의 핵심부분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재미교포 상대로 두어달 강연을 했어요. 다들 큰 동의를 표시합디다. 다만 우리정부의 토지관리 능력을 의심스러워하는 지적도 많았어요. 만연된 부패구조에 대한 우려조.
외제차에 골프회원권을 가진자들중에서 간접적으로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더군. 그들은 직접 얘기는 않고 아는 사람을 통해서 내가 토지국유화를 신조로 하는 위험한 불순주의자인듯 몰아치더라고요.
내 말은 강제적인 토지국유화가 아니고 교육적 차원에서 토지공개념을 강화한 말 그대로 「국가관리」인 것이에요.』
­김교수의 토지이념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기득권계층이 꽤 있을텐데요.
『여당의 지식인 출신 한 중진의원이 그래요. 김교수가 엄청난 말을 했다구요. 그러면서 한정된 토지만을 국가가 관리해야 자본주의를 꽃피울 수 있는 통일체제가 가능하다고 동조합디다.
조국의 현실과 미래를 내다볼때 가진 사람과 못가진 사람과의 최소한 공감대를 마련키 위해 땅문제만이라도 해결돼야 한다고 봐요.』
­재야나 학생운동권은 어떻습니까.
『내가 그같은 과격주장을 한데 쇼크를 받아서 그런지 별반응은 없었어요.』
­야당의 통합운동이나 5공세력의 신당창당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념이 아닌 인물중심,존중보다는 비난하기에 급급한 구정치인의 생리상 신민·민주당의 통합은 어려울것 같아요. 설사 그렇게해서 통합이 된다해도 개별이익을 찾다가 당의 공동선을 해치기 쉬울겁니다.
국민적 에너지를 야통운동보다 깃발출현의 새 국민운동에 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5공세력이 당을 만든다면 6공에 대한 분풀이 성격이 있을거요. 동기부터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정당활동을 막을 수 없겠지만 그들에 대한 심판은 이미 내려졌다고 생각해요.』
그에관한 보도가 나간후 김교수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우리 집 대문은 항상 열려 있어요. 또 편지를 보내주면 필요에 따라 답장을 할 것이고 깃발을 꽂는 시점에서 모두 연락을 취할 것이오』라고 했다.
교수의 서재 테이블 구석엔 「선생님께서 대통령에 출마하시면 제돈으로 한국 가서 부르짖으며 도와드리겠다」는 이민 17년된 한 재미교포의 편지가 놓여있었다.<전영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