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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이데올로기 편 가르기에 "피멍"|좌-우, 보수-진보로 갈려 술자리조차 기피|"5공에 협조적" 원로도 매도…제명사태까지|자기 틀속에 갇혀 비판 위한 비판만 되풀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이 빨갱이 ××,그런 시나부랭이나 써댈거냐. 계속 그랬다간 집을 폭파시켜 버릴거다.』
한 젊은 민중시인은 빨찌산 투쟁을 형상화한 자신의 시가 문예지를 통해 발표되자마자 협박전화에 계속 시달려야 했다.
그런가하면 베스트셀러 작가 L씨는 민중문학진영의 평론가들로부터 「역사적 허무주의자」라는 등의 집요한 공격을 받아오고 있다.
『이데올로기란 한갓 이데올로기, 모든 이데올로기란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는것. 이 오만한 역사적 상대주의 앞에서 비로소 나는 마음이 놓였다. 자유주의 수호를 외치는 구호도 가소로웠고 혁명구호도 똑같이 가소로웠다. 이 도저한 허무주의자 앞에 놓인 것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내 운명의 표정, 그외로움뿐이다. 나는 그것을 학문적인 의상을 빌려 「가치중립성」이라 부르곤 했다.』
국문학자이면서도 동시대에 창출된 가장 많은 문학작품을 읽고 비평하는 중진평론가 K씨는 자신의 문학연구및 비평관을 위와같이 밝혔였다. 우리의 파란많은 근·현대사를 헤치며 나온 작품들을 고스란히 「작품」으로서만 살리기 위한 K씨의 이같은 곤혹스런 「고백체 문학관」은 그러나 최근 한 신진국문학자에 의해 비판된다.
『남들이 감옥에 가고, 불꽃처럼 몸태우며 역사의 속도를 앞당기던 계절, 그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이성의 책략이 었다』고.
외침·분단등 우리의 불행한 근·현대사에 비례, 문화·예술계도 정치·사회적 신념 또는 이데올로기에 피멍들어있다.
시단 50여년을 살아온 한원로시인은 최근 『나를 더러는 시인이라하기도하고 더러는 시인이 아니라고 하기도하는데 나는 평생 시인으로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었다』고 술회했다. 이 시인은 5공 출범때 전전대통령에 대한 지지발언을 했던탓에 80년대를 숨죽여지냈다. 그를 따르던 문학후배들은 「노망든 사람」이라며 하루아침에 등을 돌렸고 또 그의 말대로 「시인이 아니다」며 문단에서 내팽개쳐 버렸다. 명절때면 집안이 가득차도록 모이던 문인들이 모두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그를 내팽개친 그누구도 그의 시의 영향권에서 벗어날수 없고, 또 지금도 그가 한국의 대표시인임을 십분 인정한다. 대시인으로서 그의 자세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를 통박하면서도 인간적으로는 그를 따뜻하게 포옹해줄 여유가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일까.
남들이 어떻게 볼까 무서워 그를 찾지 않는다. 문화·예술인다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
예술이 급속히 냉각되고 신념 또는 이데올로기만이 들끓기 시작한것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러나 문화·예술계의 이러한 「이데올로기몸살」은 일제시대로까지 거술러 올라간다. 친일활동을 폈던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시비가 명쾌히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데올로기 문제는 종양처럼 자라오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 혹은 형상화해 분단시대의 모순을 밝혀내고 통일로 나가기 위한 일련의 진보적 학·예술운동이 일어나면서 문화·예술계는 좌·우, 진보·보수의 대립구조를 노골적으로 띠게 됐다. 민중의 삶과 정서를 내세우는 진보적 학·예술운동은 80년대 초반에는 소그룹 단위로 이루어지다 중반들어 분야별로 단체를 결성하고 나아가 연합체인 「민예총」으로 발전되면서 기존의 문화·예술계를 강화했다.
기존의 학·예술로는 우리의 정치·역사·사회적 현실을 해석·형상화 할수 없다고 본 이들은 주로 그동안 금기시된 좌파 이론에 기댄 사회학적 상상력에 의존했다. 때문에 이들은 그들이 「미국식학·예술이나 심지어 식민지아래의 일본식」이라 부른 기존의 보수·우파진영과는 대립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학문이나 예술활동이 편가르기처럼 나누어져 이루어져 갔다.
이렇게 나누어진 이편과 저편은 같은 사회 테두리 안에 살면서도 서로 술자리도 같이 하지 않으려 하고 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 어느쪽에서도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절대적」이라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각기의 이념에 그 자유를 가두고 있다. 순수와 실험시의 대부라 할 수 있는 S·K씨를 5공에 협조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문단에서 내팽개쳤으며 저항시인의 우상으로 여겼던 K씨를 그가 소신껏한 대사회적 발언을 문제삼아 진보적 문학단체에서 제명시켰다. 개인적 소신과 창작의 자유가 집단적 이데올로기에 압제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폭은 실증주의에 매몰돼 비판부재, 심지어 체제홍보로, 또다른 한폭은 민중과 변혁만 강조, 비판을 위한 비관으로 나가고 있다』는 한학자의 말처럼 이데올로기에 의한 보수·진보의 대립구조아래서는 삶과 역사를 각기반쪽밖에 바라볼수 없다. 때문에 『이데올로기 집착에서 나오는 의도적인 단절을 지양하고 서로 상대방의 이론과 창작을 존중할때만 온전한 문화·예술은 꽃필 수 있다』는 것이 이데올로기로 굳어진 우리의 현대사를 살아온 문화·예술인들의 지적이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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