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교부 '청렴나무' 만든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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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건설교통부 직원들이 청렴나무에 이름표를 걸고 있다. 이날 행사는 며칠 전 건교부 감사팀장이 총리실 암행감사반에 ‘설떡값’ 을 받았다 적발된 뒤 반성의 의미로 열렸다. [사진=김형수 기자]

12일 건설교통부는 이용섭 장관을 비롯한 전 직원이 정부 과천청사 대강당에서 '청렴 실천 결의대회'를 열었다. '청렴나무'에 각자의 이름을 적은 명찰을 달았다. 전 직원이 청렴을 약속하는 서약서도 제출했다. 건교부의 느닷없는 청렴 행사에는 이유가 있었다. 행사 며칠 전 본청과 소속 기관에 대한 감사권을 가진 H 감사팀장이 외부 인사로부터 '설 떡값'을 받았다가 국무총리실 암행감찰반에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2월 8일 오후 1시30분쯤 과천청사 정문. 외부 인사와 점심식사를 마친 H팀장이 경비 경찰에게 공무원증을 보여주며 막 청사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감찰반이라고 밝힌 낯선 사람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H팀장은 당황했지만 검문검색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감찰반 직원들이 몸 수색 끝에 H팀장의 상의 안주머니에서 하얀색 봉투를 찾아냈다. 그 속엔 '떡값' 50만원이 들어 있었다.

설을 앞두고 과천 관가에 대한 사정당국의 눈초리가 매섭다. 현재 과천청사 주변에는 30여 명의 국무총리실 암행감찰반을 비롯해 감사원.국가청렴위원회 소속 감찰반이 움직이고 있다.

H팀장의 경우 건교부 청사 옥상에 자리 잡은 총리실 감찰반에 꼬리가 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건교부 관계자는 "옥상에 있는 감찰반원은 망원경으로 혼자 식사하러 나가는 공무원, 밖에 대기하고 있는 고급 차에 올라타는 공무원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옥상의 감찰반원은 의심쩍은 공무원이 눈에 띄면 1층에 있는 동료에게 무전으로 연락한다. 이들 감찰반원은 식당까지 뒤따라가 은밀히 동태를 살핀다. 현장에서 금전이 오가면 곧바로 임의동행한다. 현장에서 적발되지 않으면 H팀장의 경우처럼 정문에서 검문검색을 해 혐의를 밝혀낸다. 이 외에도 감찰반은 청사 안내동, 공무원들을 태우기 위해 식당 차량들이 줄지어 선 청사 옆문 부근에 많이 배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감찰반 직원들에게 연행된 H팀장은 일단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떡값을 준 사람은 친구일 뿐"이라며 "절대 이해관계에 따른 뇌물이 아니다"고 항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H팀장 사건이 적발되자 건교부는 초상집 분위기다. '청렴도 조사' 순위(지난해 34개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30위)를 끌어올려 보겠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이 수포로 돌아간 때문이다. 건교부 직원들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사팀장이 떡값을 받다 적발됐다는 소식에 더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건교부는 부랴부랴 집안단속에 부산한 움직임이다. 850여 명의 직원을 모아 '청렴 실천 결의대회'를 연 데 이어 장관의 서릿발 같은 지시가 떨어졌다. 이용섭 장관은 새로운 '직무 관련자 접촉 시 행동기준'을 만들어 "앞으로 직무 관련자와는 모든 식사.음주를 금한다"고 발표했다. 이 장관은 "이를 위반하면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어떤 관용도 베풀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현실성이 떨어질 정도인 이 장관의 엄격한 지시가 나오자 과천의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건교부 고위 관계자는 H팀장에 대해 "일단 대기발령을 낸 뒤 총리실 조사가 끝나면 그 결과에 따라 징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준현 기자<takeital@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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