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집"자녀 비행 잦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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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K고교 1학년 김모군(16)은 학급 부반장이면서 공부도 썩 잘해 학급 1, 2위를 다툰다.
근면성실하고 성격도 침착해 선생님뿐 아니라 학생들간에도 모범학생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쉬는 시간에 김군이 갑자기 부엌칼로 동료급우 이모군(19)을 찔러 중상을 입혔다.
김군이 1교시 수업시간중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었는데 이군이 이를 조롱하자 격분, 집에 가 부엌칼을 들고와 그대로 찌른 것이다.
모범학생이 하루아침에 범죄자 문체학생으로 전락한 것이다. 김군은 퇴학은 면했지만 3일간 무단가출했고 정신병적 증상을 일으켰다.
학생주임 지동육교사가 김군에 대한 인성검사를 실시한 결과 가정은 중산층으로 비교적여유가 있었으나 김군의 성격은 반사회적 성향과 신경증적증세가 농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모범학생으로서 주위의기대가 부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울B중학교 3학년 안모군(15)은 조그만 공장에 다니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단둘이 살고 있으며 매사에 소극적인 학생이다.

<지나친 애정도 문제>
안군은 3학년들어 결석을 자주하면서 동료 비행학생들과 함께 1, 2학년생의 금품을 갈취하는등 문제학생이 돼버렸다.
학생주임 한치웅교사가 안군의 어머니를 불러 이같은 사실을 얘기하자 『말잘듣고 착한아이이며 달라는 돈은 모두 줘 용돈이 궁하지 않은만큼 절대그럴리 없다』고 펄쩍 뛰었다.
안군에게는 오히려 홀어머니의 하나뿐인 자식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과보호가 오히려 성격을 비뚤어지게 한 것이다.
안군은 이후에도 친구 6명과 집단 가출, 관악산에서 텐트생활을 해 정학조치를 받았으나 가까스로 학업을 마친뒤 고교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이같은 학생폭력·비행은 최근들어 저소득·결손가정이 아닌 중·상류층 가정에서 빈발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발간한 청소년백서에 따르면 생활정도별 비행청소년 분포가 저소득층의 경우 80년 90·1%에서 89년 85·9%로 감소한 반면 중류층은 9·6%에서 13·6%로, 상류층은 0·3%에서 0·5%로 각각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 「학생폭력=결손가정」의 공식이 무너지고 폭력의 유형·원인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9월19일부터 1주일간 서울시내 남녀 중·고교생 6천명을 상대로 피해조사를 실시한 결과피해유형은 금품갈취·폭행·협박·성폭행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학생 2명중 1명골로 이같은 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흔한 경우가 금품갈취로 네명중 1명꼴인 22·6%가 돈을 빼앗겨 본 경험이 있었으며 남자중학생은 40·7%가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했다.

<핵가족 가정에 경종>
폭행은 14·1%인 7백66명이 협박은 15·8%인 8백54명이 각각 피해경험이 있었다.
여학생들은 특히 성적인 희롱을 많이 받아 3명중 1명이상꼴인 37·8%가 피해를 보았으며 여고생들이 더많은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장소는 금품갈취의 경우 학교주변 골목길이나 오락실·만화가게등에서, 폭행은 교실·운동장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그렇지만 피해를 보고도 교사·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8·4%에 불과했다.
이처럼 학생폭력이 일상화되다보니 아예 빼앗길 돈을 지니고 다니는 학생도 9·7%나 됐다.
이같은 피해를 주는 학생들은 대부분 중학교 2, 3학년때인 15세부터 성격이 비뚤어지기 시작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청소년지도 육성회와 치안본부가 「사랑의 교실」참가 청소년 9백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세이전에는 비행경험이 1∼1·5회에 불과했으나 15세이후 2회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지동육교사는 『15세를 전후해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소망과 현실사이의 괴리에 따른 욕구불만으로 적개심등 「이유없는 반항」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상담교사들은 이같은 폭력의 심리적 요인은 가정·학교·사회에 공동책임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중산층이상의 비행학생증가는 가정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핵가족화가 가속되면서 과거 대가족속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배우고 역할에 따른 행동양식을 학습하는 등의 교육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매 때릴땐 훙분금물>
게다가 소수자녀를 둔 부모들이 과보호·자유방임등의 양육태도로 자립심이 약하고 인내·자제력이 부족하며 자기중심적인 아이로 만든다는 것.
이와함께 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대화없는 가족관계가 형성되면서 무관심에 따른 방탕심리가 쌓여간다는 것이다.
한편 학교에서의 입시위주 교육도 비행청소년 증가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과밀학급에서 인간화 교육이 아닌 지식편중 교육이 이뤄지고 특히 내신성적에 따른 급우들간의 경쟁심이 욕구불만·실패·긴장·불쾌감등을 일으켜 폭력행위를 통해 「쾌감」을 맛본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상담교사들은 폭력예방을 위해 가정에서는 ▲소지품 살펴보기 ▲대화분위기 조성 ▲약속지키기 ▲체벌지양등을 권하고 있다.
소지품중에 성인만화·외설잡지등이 들어있을 때는 성(성)과 관련된 문제를, 칼·송곳등이 들어있을 때는 불량학생들과 어울릴 가능성이 높으므로 가끔 챙겨봐야 된다는 것.
부모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한 결과가 되므로 불신 심리가 확대되며 체별때는 매맞는 이유를 승복시키고 절대 흥분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성을 잃은 체벌은 오히려 반항심만 키워주게되며 공격적인 성격으로 만들게 되므로 대화·설득이 최상의 교육방법이라는 지적이다. <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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