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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명창 박동진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판소리로 살아온 세월만 꼽아도 예순해가 넘는 우리시대최고의 소리꾼 박동진선생은 올해 75세. 국악무대 활동은 말할것도 없고 국립국악원 연습실에 가부좌 틀고앉아 몇시간이고 혼자 북을 두드리며 소리를 가다듬는 모습을 보면 감히 그의 은퇴기념공연 따위를 떠올릴 수가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 소리꾼으로 살겠다는 그의 생김새 처럼 옹골찬 각오만 거듭 확인하게 될뿐.
매일 오전3시에 시작되는 그의 일과를 알고보면 웬만한 청·장년들마저 기질리게 만드는 그의 꺼렁쩌렁하고 탁트인 소리힘과 당당한 몸짓이 저절로 얻어진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공연 출연등으로 제아무리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새벽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한시간쯤 단전호흡을 합니다다.』
60세만 넘어도 숨이 차 소리판을 떠날수 밖에 없던 옛 소리꾼들과 달리 그가 아직껏 노익장을 과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결로 꼽는 이 습관은 어언 25년째.
4시부터 20분쯤 냉수마찰을 하는것은 소리꾼에게 가장 무서운 적인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다시 한숨 자고나서 6시쯤 일어나 스스로 정신수양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책들을 잠시 읽는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친 그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국립국악원에 있는 자신의 연습실에서 부채를 잡는것은 오전7시30분.
세평쯤 되는 이 연습실에서 그는 자신의 북장단에 맞춰 평균 3∼4시간씩 소리공부를 한다. 『이렇게 하지않으면 오히려 온몸이 아프고 입맛도 없어지기 때문에』 이따금 피로하거나 몸살기운이 돌아도 목청껏 소리치며 이겨낸다는 것이다.
오후에는 각기업체나 언론기관및 공무원 연수프로그램 강사로 나서고 저녁이면 공연무대에 올라 그 통 큰 소리로 질퍽한 육담을 섞어가며 청중을 사로잡는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며 판소리의 재미를 일깨우는 것도 그의 일거리의 하나다. 또 간혹있게되는 전북대국악과 강의를 위해 전주까지 오가면서도 바쁘다거나 힘들다고 푸념하는 법이 없다.
키가 1m60cm쯤 된다는 그의 몸무게는 수십년째 변함없이 60kg안팎. 목에 해로울세라 술·담배는 평생 단한번도 입에 댄적이 없을뿐더러 『목에 기름기가 끼면 소리가 탁해진다』며 싱거운 김치와 우리땅에서 나는 먹거리가 들어간 된장찌개등 채식위주의 식사를 고수해온 것도 규칙적인 생활과 함께 최고의 건강상태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그는 믿는다.
이렇듯 모든 생활을 판소리에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하며 숱한 청중들을 웃기고 울려온 이 소리꾼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까지 이만하면 됐다 싶은 소리는 못해봤어요. 진정 득음의 경지에 이른 소리꾼이 무대에 나타나면 삼척동자조차 숨을 죽이게 마련이지요.』
청중들이 소리꾼에게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소리꾼 탓이라는 얘기다.
그의 판소리 경력을 아는 사람들은 『더이상 뭘 바란다면 과욕』이라고도 한다. 사실 그는 16세때 손병두선생을 찾아가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 조학진선생에게 배운 『적벽가』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기능보유자가 됐으며 명창 정정렬·이동백선생을 거치면서 나름의 경지를 이뤄 68년에는 판소리사상 전례없는 5시간10분짜리『흥보가』 완창기록을 세운 장본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리꾼들은 판소리의 한대목을 30분 이내로 부르는게 통례였고 완창이라야 이틀이나 사흘동안 나눠부르던것을 그는 한자리에 앉아 물만 마시며 쉬지않고 다 불러 버림으로써 국내외에 화제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그후에도『춘향가』(8시간), 『심청가』(7시간), 『강릉매화전』『무숙이타령』『수궁가』(각4시간), 『반강쇠타령』(4시간30분), 『적벽가』(6시간), 『배비장타령』(5시간), 『숙영낭자전』『옹고집전』『장끼타령』(각3시간) 등을 연속 완창했으며 73년에는 창작판소리 『충무공 이순신전』으로 9시간40분의 믿기 어려운 기록을 세웠다.
그의 이같은 도전에 대해 『판소리익 정도를 벗어난 짓』 이라느니 『스타의식이 지나치다』 느니하는 비난도 없지않았으나 그가 판소리 대중화의 길을 여는데 얼마나 큰 몫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지금까지 전통판소리 열두마당아다 『모세전』『팔려간 요셉』『치악산』등 스스로 만든 창작판소리 열마당을 포함한 스물두마당을 완창해낸 그의 머리속에는 이미 약 1백80시간분량의 가사가 생생하게 입력돼있어 언제 어디서든 줄줄 욀수가 있다.
『요즘은 논개와 권율장군의 일대기를 판소리로 만드는 일에도 몰두하고 있습니다.』
내년중 자신의 고향 공주에 세울 판소리기념관 개관기념공연때 첫 선보일 작정이다. 『판소리기념관을 짓기위한 땅은 이미 마련됐고 1백여명을 수용할수 있는 소극장과 연습실을 갖춘 60평 남짓한 단층건물을 짓기위한 공사비 1억5천만원도 착실히 모으고 있다』는 박동진선생.
『요즘 판소리를 배우겠다는 젊은이들은 「소리」보다 돈과 명예에 너무 집착하는게 큰 탈』이고 『서울에는 판소리를 찾는 젊은 청중이 크게 느는데 정작 본고장 호남에는 노인청중뿐이라 큰 걱정』이다. 또 『소리꾼은 똥물까지 마셔가며 죽을둥 살둥 공부해서 소리하는데 표사는 돈을 아끼겠다고 공짜로 초대권이나 달라는 몰염치한이 너무 많다』며 「자랑스런 우리의 소리」에 대한 푸대접을 유감스러워한다.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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