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독주」 우려의 소리 높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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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독재적행동 불안… 고르비 신뢰”/미국
미국은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을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보다 더 신뢰하고 있다.
미국은 소련의 보수강경파가 일으켰던 쿠데타에 반대의사를 표명,이 쿠데타를 실패케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 앞으로 경제지원문제 등 미국이 갖고 있는 대소 영향력을 감안해 볼때 지금과 같이 소련의 권력이 유동적인 상황에서 미국의 선택은 권력의 향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의 태도로 볼때 부시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계속 소 연방의 대통령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음양으로 그를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을 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옐친이 쿠데타에 저항하며 일어섰을때 『그는 용기있는 지도자이며 우리는 그의 편에 서 있다』며 찬사를 던지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 많은 미국 국민·의원·정책전문가들도 이제 옐친을 소련의 새 권력핵심으로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옐친이 승인한 발트해 3국에 대한 독립인정을 계속 유보하는 등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분명히 고르바초프편에 서 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유럽공동체(EC)국가들이 앞을 다투어 발트해 3국을 승인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이 이를 계속 미루고 있는 것은 고르바초프의 입장을 감안했기 때문이라고 백악관 안보팀들은 전하고 있다.
미국은 고르바초프가 발트해 3국의 독립을 허용한 이후 이를 승인함으로써 고르바초프의 권위유지에 도움을 주자는 계산인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현재 지위가 변치 않는한 그가 명실상부한 소련 대통령이며 옐친은 「여러공화국 가운데 한 공화국의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로버트 스트라우스 신임 주소 미국대사의 활동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는 고르바초프와는 60분간 만난데 비해 옐친과는 40분간 대담을 가졌다. 미국 언론의 움직임도 의미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28일자 사설에서 「옐친,민주주의자인가 독재자인가」라는 제목으로 쿠데타 저지이후의 옐친의 행동이 심상치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신문은 옐친에게 법을 지킬것을 촉구해 쿠데타에 저항한 점은 인정하나 이제 그가 법과 민주적 절차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가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지를 폐쇄시킨 것이나 공산당을 금지시킨 조치 등은 그 절차나 방법에서 비민주적이고 비합법적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고르바초프는 법과 절차에 따라 공산당의 해체를 촉구했으나 보복은 금지한 점 등을 들어 그를 훨씬 민주적이고 온건한 지도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아직까지 고르바초프에게 더 신임을 주고 있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부시는 미소 두 강대국의 협조관계를 기반으로한 그의 「새로운 국제질서」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아직도 고르바초프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옐친쪽에 확실한 지지를 보내야 소 사태가 안정된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일부정책전문가들은 부시의 이같은 친 고르바초프 태도가 「현상유지책」에 불과한 것이며 이로 인해 소련의 불안정이 더 길어진다는 비판도 하고 있다.<워싱턴 문창극 특파원>
◎“지나친 민족주의 신파쇼 소지”/소련
소련에서 쿠데타를 분쇄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 정책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소련의 대표적인 개혁파 주간신문인 코메르산트지는 지난 26일자 최신호에서 「러시아의 복수」라는 제목으로 옐친의 행보가 초래할지도 모르는 문제점들을 우려하는 논조의 기사를 게재했으며 옐친의 포고령으로 당장 피해를 본 노보스티통신을 비롯한 소련의 보수계 언론들은 옐친의 행동이 초법률적인 것이라며 불평을 털어놓고 있다.
몇몇 소련 언론인들은 옐친의 이와 같은 행보의 진정한 의도는 9월2일 개최될 인민대의원 대회전에 러시아가 확보할 수 잇는 최대 한도의 권력을 확보,연방과의 이해대립에서 우위를 확고하게 지키며 그동안 연방과의 공동보조로 러시아공화국과 갈등을 빚었던 러시아공화국내의 자치공화국들을 옥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연방정부의 주요 각료직을 자신의 영향권내에 있는 인물로 미리 인선함으로써 앞으로 있을 연방 대통령선거와 인민대의원 선거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또한 연방의 힘이 약화된 상황에서 미리 연방과 러시아공화국간에 분쟁을 야기시켰던 재산들을 러시아공화국 소속으로 확보해 러시아의 국부를 증대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옐친의 의도는 9월15일 이후부터 시작될 신연방조약 체결협상이전에 미리 연방의 힘을 약화시켜 쿠데타이후의 변화된 상황에서 연방조약 자체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이의 체결 자체를 보이콧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각 자치공화국을 달래기 위해서는 러시아공화국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즉 러시아공화국 없는 연방은 의미가 없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소련의 국민들과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연방정부의 지도부에 심어주려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옐친이 우선 러시아공화국내 각 자치공화국의 행정력을 장악하기 위해 자치공화국의 권력을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에게 이양하도록 명령한 자신의 포고령을 현실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 충복을 조만간 임명하는 한편,러시아공화국내에 존재하는 각 자치공화국의 법령과 행정조직을 러시아공화국의 대통령관할로 이양시킨 것을 명문화시킨 자신의 포고령을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 이전까지만 해도 각 지방의 자치공화국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연방정부를 믿고 옐친의 명령을 무시했으며 고르바초프도 더많은 권력을 요구하는 옐친등 각 공화국 대통령들의 압력을 자치공화국 카드를 이용해 대응했었다.
연방의 권력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이들 자치공화국들은 러시아공화국 등의 압력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이익을 둘러싼 충돌과 갈등이 자칫 민족간의 대립을 초래할까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이미 그루지야공화국에서 나타나 감사쿠르디아 그루지야공화국 대통령이 그루지야공화국내의 자치공화국인 아브하지야공화국 등의 권리를 박탈,자신의 권한하에 들어올 것을 명령하자 아브하지야인들이 반발,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것에서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러시아공화국의 경우 현재 공화국의 영토내에 있는 모든 자원 등에 대해 연방의 권한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각 자치 공화국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사실상 러시아만의 이익에 집착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한편 옐친이 쿠데타에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발행을 중단시킨 프라우다 등 보수계 신문과 노보스티통신 등의 모든 재산과 인쇄시설 등은 러시아공화국이 국유재산화하게 되어 있어 러시아공화국의 언론에 대한 통제력이 지나치게 강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낳고 있다.
전쟁 등의 비상시국이 아닌 평화시에 이와 같이 포고령 하나로 민간의 재산을 국유화하는 것이 과연 합법적이냐는 의문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몇몇 신문들은 옐친의 이와 같은 행동의 전례로는 1945년 프랑스에서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르노 자동차회사를 국유화한 것 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옐친이 지나치게 러시아의 이익과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변화된 상황을 이용한다는 우려섞인 분석들을 하고 있다.<모스크바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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