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78세 모자의 애틋한 세밑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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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두 칸 오두막에서 단 둘이 살던 100세 노모와 78세 아들의 설 밑 죽음이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노인수발보험 신청자 발굴을 위해 경북 안동시 북후면 월전리 황성구 할머니 집을 찾았던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 김모(30)씨는 지난 5일 죽은 지 며칠 지난 모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아들 임재춘씨는 방에 누운 채로 노모는 부엌 처마에서 쓰러진 채 숨져 있었다. 심장병 등에 시달렸던 임씨가 누운 바닥엔 피가 흥건했고 보일러도 돌아가고 있어 부패가 심한 편이었다. 시신을 안치했던 안동 S병원 측은 아들이 심장마비로 먼저 죽었으며, 노모는 낙상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생전의 모자 관계로 보아 아들의 위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겨우 기어다니는 노모가 부엌으로 나오다가 문지방에서 화를 당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월전리 주민들이 아들 임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달 29일이었다. 29일 장날 이후 37호나 되는 마을 주민 중 누구도 임씨를 본 사람은 없었다. 두 모자는 변을 당하고도 일주일이나 동네에 방치돼 있었던 셈이다.

지난 9일 월전리 ‘교회마을’의 마을회관 뒤편 가운데 자리잡은 황 할머니 집을 찾았다. 유족의 요청으로 누군가가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황 할머니는 교회마을에서 100세를 넘긴 최고령자였으며, 자식없이 홀어머니를 모신 아들은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으로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월전리는 해발 350m쯤 되는 학가산 자락에 자리잡은 안동시가 지정한 효(孝)마을. 이장 김동열(52)씨는 “불이 계속 켜져 있어 그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동네에서 처음 100세를 넘긴 어르신이어서 올 어버이날에 옷을 만들어 드리기로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아들 임씨와 가끔 어울렸던 심수언(67)씨는 “그 사람은 노모에 대한 정성이 지극했다”며 “‘내가 먼저 죽으면 어머니 장례만은 꼭 좀 부탁한다’며 자주 당부했다”고 회상했다. 아들 임씨는 불편한 몸이지만 장날만은 꼭 노모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날랐다. 29일엔 노모가 좋아하는 베지밀을 샀다.

심씨는 “농촌도 빈 집이 많은 데다 농사일이 바빠 이웃 집 사정을 알기가 옛날같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황 할머니 집도 빈 집에 싸여 있었다. 할머니 집 왼쪽은 폐가로 마당엔 잡초가 무성했고 길 건너 오른쪽 집은 주인이 입원해 역시 비어 있었다.

그는 주민들이 문상을 갔지만 영안실도 없고 상주도 없어 부의금도 전하지 못했다며 인생무상을 절감한다고 덧붙였다. 모자는 7일 한 줌의 재로 힘겨운 이승을 마감했다. 객지에 나간 세 딸은 장례를 마친 다음날 마을을 찾아 주민들에게 그동안의 보살핌에 답례했다.

안동=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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