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임신중엔 살생 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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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부인이 임신 중에는 생물을 해치거나 살생하지 말 것」. 이것은 한국 전통사회에서 지켜오던 부성태교 중 하나다.
유안진 교수(서울대 아동학)가 최근 펴낸 『한국여성 우리는 누구인가』(자유문학사 간 상·하권 총 6백31쪽, 각 권 4천 원)에는「아버지가 지킬 태교」가 수록돼있어 관심을 모은다.
우리 조상들이 행했던 부성태교는 ▲상식으로 귀숙일(씨 내리기 좋은 날)암기 ▲교양과 성교육으로서의 부성태교 ▲합방시의 금기사항 준수 ▲성태 후의 금욕생활 ▲적선과 적덕 행하기 ▲모성태교의 지원 ▲근신생활 ▲치성 드리기 등 크게 나누어 여덟 가지.
매월 초하루·보름·그믐날과 큰 비나 혹독한 추위, 짙은 안개가 낀 날은 합방을 금했다.
또 몸의 상태가 술을 마셔 정신이 혼미하거나 과식했을 때, 목욕이나 머리를 감은 후 젖어있을 때는 합방을 기피하도록 했다.
만약 이를 어겨 태어난 자식은 우둔하거나 귀머거리·수족불구자·언청이 등이 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으면 잔병이 많아 장수하지 못하거나 물효자·경박한 자가 되기 쉽다고 경고했다.
한 마을이나 이웃에 초상이 나거나 친지·자기집에 제사가 있는 날 합방하여 태어난 아이는 반드시 대를 끊어버릴 아이라고 했다.
성태 후 부성태교의 첫째가 각방 사용. 이와 함께 선행이나 덕행을 쌓도록 하고 있다. 즉 거미줄에 걸린 나비나 잠자리를 살피고 도와주거나 가물 때 작은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를 냇물에 놓아주며, 고아나 거렁뱅이에게 의복과 음식을 나눠주도록 일렀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동네 우물가나 길을 청소하는 것, 추운 겨울에 행인들을 위해 냇물에 징검다리를 놓는 일들도 부성태교에 속했다.
만약 실수로 새·뱀·물고기를 살생하게 되면 태어나는 아이가 그 짐승의 형상을 하거나 원혼이 복수하여 집안이 망하게 된다고 했다. 초목이라도 중심 줄기를 뽑지 못하게 했으며, 땔감을 마련할 때도 죽은 나무 둥치나 곁가지에서 구하도록 했고 큰 나무 둥치에 도끼나 낫을 대지 못하도록 했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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