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여성, 뉴욕증권거래소 폐장 종 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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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헤지펀드는 성과가 중요할 뿐 남녀 차이가 문제되지 않아서 여성이 도전해 볼 만한 분야입니다."

이달 5일(현지시간) 오후 4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폐장을 알리는 종을 친 김혜진(영어명 캐롤.37.사진)씨. 그는 헤지펀드계 홍보전략 분야에서 10여년 동안 활약해온 이 분야 전문가이다. 최근 뉴욕 월가의 저명인사로 부상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빛을 발휘하게 된 데는 헤지펀드계에서 일하는 여성 스타들과 함께 창립한 비영리단체인 '헤지펀드 여성 100인(100 Women in Hedge funds)'의 역할이 컸다. 인적 교류와 함께 자기 개발.자선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 단체에 지원자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100명으로 출발했지만 현재 회원은 5000명이다. 뉴욕 본부를 제외하고 미국 내 9개 도시와 런던.홍콩 등 11개 지역에 지사까지 생겼다.

그가 이 분야 인맥 조성에 주목하게 된 것은 월가에서 일하면서 느낀 개인적 아쉬움 때문이라고 한다. 헤지펀드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많지만 조직화 되지 않아 제대로 된 단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 투자컨설턴트인 다나 홀과 손잡고 단체를 만들었다. 명망있는 연설자를 초청, 90차례 이상의 국제적 행사를 치러냈으며 1000만 달러의 봉사 기금도 마련했다.

김씨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토론토대학에서 도시경제학을 전공한 재외동포 2세다. 60년대 이민 온 부모님 밑에서 성장한 덕에 영어.불어 외에 한국어도 능숙하다. 캐나다에서 일을 시작한 그에게 모국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1994년 국내 최초로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기업설명(IR.Investor Relations)팀을 구성한 LG전자 관계자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는 98년까지 이 회사 국제금융부에서 3년 반 동안 부지런히 뛰었다. 그는 "한국 기업에서 일하며 익힌 지식과 경험이 지금 업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 문화를 맛 본 김씨는 99년 뉴욕으로 다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지난해부터는 투자회사 '리먼 브라더스'에서 IR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헤지펀드 상품과 관련한 정보를 투자매니저들에게 제공하는게 그의 주 업무이다. 김씨는 "한국 기업에서의 근무 경험 때문인지 아시아계 손님이 오면 어떻게 든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한다"며 활짝 웃었다. 김씨는 토론토에서 만난 한인 이주훈씨와 결혼, 네살 난 딸을 두고 있다.

뉴욕지사=송희정 기자, 염태정 기자

◆폐장 종=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는 매일 개장과 폐장 때 종을 울린다. 1870년대 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신규 상장된 기업이나 좋은 실적은 낸 기업 관계자들이 맡는다. 남아공 전 대통령 만델라,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 등 명사들이 초청돼 종을 울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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