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협력,일 독주를 경계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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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큰 몫을 차지하려는 일본의 발걸음이 최근 부쩍 빨라지고 있다. 정치·군사대국화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제블록화의 추진을 검토중이라고 보도됨으로써 주도적 역할을 굳히겠다는 속셈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검토중이라는 경제블록화 구상의 골자는 우선 미국·캐나다와 자유무역권을 만든 다음 경제적으로 낙후된 한국등 기타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를 참여시키는 경제권을 만든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상은 단계적으로 관련국가의 공동번영을 추구한다는데서 논리적으로나 명분상 흠잡을 일은 아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아시아지역의 생산기지와 시장을 석권하다시피한 일본이 주도적으로 앞장서 지금과 같은 경제구조를 더욱 굳히려는 발상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경제블록화는 이미 하나의 추세로 되어 그 필요성은 이제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지역경제의 공동발전을 꾀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각료회의(APEC),태평양지역 경제협력회의(PECC)들의 협의체가 구성되어 활발한 논의가 진행중에 있다. 일본의 구상도 그러한 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의견이라는데서 우리로서 그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순수한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한 모든 관련 당사국간의 협조와 공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이라면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구상이 앞으로 세계경제까지 일본이 주도하겠다는 장기적인 전략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 3단계로 되어 있다는 이 구상의 최종단계가 유럽공동체(EC)등 서구 주요국가들에까지 연계한다는 원대한 포부가 바로 그러한 인상을 주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의 공동번영안이 때마침 정치·군사적으로 아시아를 발판으로 진출하겠다는 적극적인 의도가 여러 경로를 통해 노출되고 있는 시기에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아시아 각국과 국내여론이 이러한 일본의 동향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데 반해 신중하던 우리 정부가 지난 17일 공식적으로 경계의 뜻을 밝힌 점과 관련해서도 이제 일본의 동향에 심상치않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이처럼 주변국가들의 신경이 곤두선 가운데 굳이 또다른 자극을 줄 필요는 없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경제블록화에 따른 공동번영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일본이 주도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협의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측면 지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주도권을 잡겠다고 나서겠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오히려 경계심과 반발을 불러일으켜 순조로운 경제협력을 저해할 우려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정부로서도 이러한 바깥 흐름에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남북한 문제등 북방외교도 중요하지만 너무 한쪽에만 치우치지 말고 복잡해지는 국제화시대를 향한 넓은 안목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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