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로 주목받았던 소설가 양헌석(47)씨가 13년간의 침묵을 깨고 내놓은 장편소설 '오랑캐꽃'은 연좌제로 인한 정신적 외상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1960~70년대 연좌제로 고통받은 이들이다. 힘겹게 40대에 이른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IMF라는 또 하나의 가파른 위기였다.
양씨는 "과거 연좌제가 이념적인 것이었다면 IMF 이후 일부 특권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은 경제적 연좌제에 걸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설의 두 주인공은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둔 윤기립.윤지원 남매다. 군대에서 네 차례나 전출당했고 사회에 나와 변변한 직업을 구하지 못한 기립은 주식투자로 눈 먼 돈을 챙기자 베트남 여자와의 쾌락에 탐닉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오빠와 대조적인 여동생 지원은 신문기자 출신으로 억척스럽게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스타일이다.
소설은 양씨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고 있다. 10여년 전 작고한 양씨의 부친은 사회주의자로 해방 후 전향을 거부해 12년간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양씨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알몸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쨌든 자기를 고백한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여태껏 나는 살아왔다"고 밝혔다.
신준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