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를 고백하며 세상을 고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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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상적으로 불온한 가족을 둔 죄로 연좌제에 발목잡혔던 사람들이 진학도 못하고 취업도 하지 못한 채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집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로 주목받았던 소설가 양헌석(47)씨가 13년간의 침묵을 깨고 내놓은 장편소설 '오랑캐꽃'은 연좌제로 인한 정신적 외상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1960~70년대 연좌제로 고통받은 이들이다. 힘겹게 40대에 이른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IMF라는 또 하나의 가파른 위기였다.

양씨는 "과거 연좌제가 이념적인 것이었다면 IMF 이후 일부 특권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은 경제적 연좌제에 걸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설의 두 주인공은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둔 윤기립.윤지원 남매다. 군대에서 네 차례나 전출당했고 사회에 나와 변변한 직업을 구하지 못한 기립은 주식투자로 눈 먼 돈을 챙기자 베트남 여자와의 쾌락에 탐닉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오빠와 대조적인 여동생 지원은 신문기자 출신으로 억척스럽게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스타일이다.

소설은 양씨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고 있다. 10여년 전 작고한 양씨의 부친은 사회주의자로 해방 후 전향을 거부해 12년간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양씨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알몸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쨌든 자기를 고백한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여태껏 나는 살아왔다"고 밝혔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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