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할머니(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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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그런 일이 없다니 말이 됩니까.』 66세의 할머니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오늘 아무 아픔도 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는 지금 가족은 물론 집도 절도 없이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우리앞에 나타났다.
김학순 할머니의 얘기다. 16세 앳된 나이에 「정신대」로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 생활을 했던 그 할머니의 한맺힌 증언.
공식 기록은 아직 볼 수 없지만 일제치하에서 일본군이 마구잡이로 끌어간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10만명,어쩌면 2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멀리 태국,싱가포르,중국,태평양 고도의 일본군 전선에서 종군위안부 생활을 해야했다.
지금은 태국땅에서 태국인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는 어느 할머니는 1942년 경북 안동에서 22세의 나이로 정신대에 끌려갔다. 종전이 되었지만 25세의 꽃다운 아가씨는 갈곳이 없었다. 고향에 돌아간들 그가 어떻게 처신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 70노파가 된 그 할머니가 지난 4월 고향을 찾아가 친동생과 친지들을 만났다. 그런 뼈아픈 사연을 초월할 연치가 된 것이다.
그러나 국내와 해외엔 이런 할머니들이 아직도 많을 것이다. 지금 연세가 많아야 70쯤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날까지 얼굴들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나서겠는가.
일본은 바로 그점을 속으로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할지 모른다. 보상은 고사하고,사죄조차 한마디 제대로 한 일이 없는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실로 간사하고,뻔뻔한 사람들이다.
그 일본이 오늘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국제사회에서 활보하는 모습은 우리눈엔 가소롭기만 하다. 이것은 속된 시기나 질투가 아니다. 도덕적으로 건강하고 겸손하지 않은 일본은 언제나 우리에겐 불쾌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지금도 늦지 않다. 정신대 할머니들은 이제 인생의 한고비를 넘기고,영욕을 초월할 연세가 되었다. 역사의 기록을 위해서도 증언을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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