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51. 미스 코리아 - 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미스코리아 오현주양이 유니버스 대회서 받은 트로피를 안고 포즈를 취했다. 그가 입은 한복 드레스 역시 내가 디자인한 것이다.

한복 모티프로 디자인한 푸른색 롱 드레스에, 머리에는 분수 모양의 구슬이 달린 족두리를 쓴 미스 코리아 오현주는 새 빨간 장구를 흰색 어깨띠로 짊어지고 장구를 두드리며 무대 위에 나타났다. 나는 이미 지난 해에 샤프론(보호자) 자격으로 이 대회를 참가했었기 때문에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의상을 디자인할 때에도 신중을 기했고 시장에게 드리는 선물도 심사숙고해서 장구로 정했다. 현주에게도 미리 장구를 배우도록 했다.

현주는 장구를 어깨에서 풀어 시장 앞에 놓고 큰 절을 했다. 시장은 답례로 행운의 열쇠를 건네주었다. 현주는 일어나서 열쇠를 받으면서 "저는 한국에서 온 미스 코리아입니다. 그런데 시장님, 저는 커다란 선물을 드렸는데 어째서 시장님은 이처럼 작은 선물을 주시나요"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 관객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사회자도 배를 잡고 웃어대다가 겨우 웃음을 멈추고 "미스 코리아, 당신은 정말로 한국의 '루실 볼'이군요."하고 감탄했다. 당시 루실 볼은 '왈가닥 루시'라는 별명과 함께 TV를 통해 미국 대중들의 인기를 휩쓸고 있었던 코미디 배우였다. 현주의 천진난만하고 위트 있는 유머에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즐거워했다. 이렇게 첫 날 개회식은 성공적으로 막이 내렸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지역 신문마다 현주의 사진이 1면을 장식했고 할리우드에서도 전보가 여러 장 날아와 있었다. 현주와 나는 그 전보를 대회가 끝날 때까지 열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 후에도 현주의 사진은 매일 신문에 등장했다.

미스 코리아의 인기는 나날이 더해갔고, 드디어 일반 대중들이 직접 투표하는 인기상을 발표하는 순간이 왔다. 결과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미스 코리아'였다. 호명을 받은 현주가 잰걸음을 치며 무대 중앙으로 뛰어 나오자 환호 소리와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어 다음날은 사진 기자들이 뽑는 '포토제닉 상', 그것 역시 현주의 것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심사. 최종 심사는 수영복 심사로 시작해, 롱 드레스로 이어진다. 사회자가 '미스 코리아'하고 부르자 현주가 수영복 차림으로 런웨이로 걸어 나왔다. 갑자기 관객석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순간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분명 수영복 차림을 보고 실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늘씬한 팔등신 서양 미인들 사이에서 현주의 몸매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20초쯤 지났을까. 서서히 박수 소리가 커지더니 급기야는 실내가 떠나갈 듯한 환호와 갈채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다시 '미스 코리아'를 외치고 있었다.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나는 눈물이 치솟았다. 현주의 내면적인 매력이 외모를 극복하고 사람들 마음에 파고 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드레스 심사. 걱정할 것이 없었다. 현주는 너끈히 15등 안에 입선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목표는 '미스 유니버스에 오를 수 있겠는가'였다.

노라 ·노 (디자이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