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치인 단식사] 죽·곰탕 몰래먹다 들키기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26일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은 정치적 약자의 최후 항거 수단으로 여겨진다. 수많은 굴곡으로 점철된 한국 정치이기에 '정치 단식'의 역사도 그만큼 깊다.

대표적인 사례는 김영삼(YS)전 대통령이 1983년 광주 민주화운동일(5월 18일)에 맞춰 시작한 단식. 그는 5공 치하에서 2년째 이어진 가택 연금과 정치 규제에 항거, 23일간 단식했다. 그러나 언론 통제가 심한 때라 외신엔 대서특필된 반면 국내 언론에선 '한 정치인의 식사 문제'정도로 표현되다 단식이 중단된 뒤에야 관련 보도가 났다.

김대중(DJ)전 대통령도 평민당 총재였던 90년 10월 내각제 포기 및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며 13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DJ가 탈진, 입원하자 평민당 의원 30여명이 단식에 동조하기도 했다. DJ는 이에 앞서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78년 두번, 80년 한번 단식하기도 했다.

이기택 민국당 고문은 두 차례 단식 경험이 있다. 그는 한나라당 총재대행이었던 98년 10월 경성 비리 연루 혐의로 검찰 소환 대상이 되자 '야당 파괴 저지' 명분으로 25일간 곡기를 끊었다. 86년엔 직선제 개헌 쟁취와 4.13 호헌 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17일간 단식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단식은 탈진과 입원으로 끝나는 게 보통이다. 83년 YS, 90년 DJ 단식 때도 그랬다. 10일 이상 계속될 경우 체중은 5~10㎏ 줄고 혈압도 급격히 떨어진다. 특히 단식 시작.중단시 주의하지 않으면 건강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식중독으로 끝난 특이한 케이스다. 그는 95년 5.18특별법으로 수감되자 12월 3일부터 옥중 단식에 들어갔다. 명분은 자신이 통치권을 행사한 5공의 정통성을 인정받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탈진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여기서 세균에 오염된 쌀뜨물을 먹고 식중독으로 혼절, 27일간의 단식을 마감해야 했다.

최근에는 2001년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이 언론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했다. 그는 당초 단식보다 농성에 맘이 있었으나 '단식 전문가'로 알려진 金모 목사가 찾아와 물과 소금만 먹게 했다는 것이다. 결국 단식농성은 20일간 이어졌다.

한편 이들 단식 사례 중 몇몇은 '가짜'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단식 시늉만 했을 뿐 심야에 죽이나 심지어 곰탕까지 먹는 장면이 측근이나 기자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YS의 경우는 말 그대로의 단식으로 기억하는 정치인이 많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40년간 정치하는 동안 단식을 많이 봤으나 YS만큼 확실하게 하는 사람은 못 봤다"고 말했다.

남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