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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유 로비 의혹 수사 "거짓 진술 압력"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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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동부지검 선우영 검사장이 6일 제이유그룹 수사담당 검사가 피의자에게 거짓 진술을 요구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김성룡 기자]

'단군 이래 최대의 사건'이라고 불리던 제이유그룹의 로비 의혹 사건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검찰이 제이유의 정.관계 로비스트로 지목했던 강정화(47.여)씨가 5일 "'검사가 거짓 자백을 강요했다'며 검찰의 수사 과정을 녹음한 테이프를 공개하면서다. 이 녹음테이프에는 제이유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 소속 검사가 지난해 9월 22일 김모 전 제이유그룹 상품 담당 이사에게 수사에 협조하면 '집행유예가 되도록 구형을 1년만 할 수도 있다'고 회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동부지검은 6일 "반어적 의미로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대검찰청은 특별감찰반을 구성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대검은 6일 거짓 진술 요구로 물의를 빚은 서울동부지검의 백모(39) 검사를 춘천지검으로 발령하고 수사 업무에서 배제키로 했다고 밝혔다. 강정화씨가 검찰총장에게 백 검사 등을 수사해 달라며 낸 고발장을 대검 감찰부에 배당해 수사토록 했다.

대검 관계자는 "감찰반은 백 검사가 수사한 해당 사건 모두를 조사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감독자의 지휘 소홀 여부를 철저히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백 검사가 근무한 서울동부지검은 이날 내내 당혹스러운 분위기였다. 선우영 검사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자청, "수사 과정에 있었던 담당 검사의 부적절한 언행과 조사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또 "앞으로 있을 대검찰청의 특별 감찰에 적극 협조할 것이며 유사 사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에 따르면 백 검사는 "'거짓말을 하라는 거냐'며 버티는 피의자를 추궁하던 중 진실을 말하라는 반어적 의미로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하게 됐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시 35회에 합격한 백 검사는 1999년부터 판사로 근무하다 2005년 검찰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동부지검 관계자는 "문맥상 의미가 어떠하건 수사 검사로서 부적절한 언행이었다"고 말했다.

◆테이프에 담긴 내용은=강정화씨가 공개한 녹음테이프에는 백 검사가 김 전 이사를 신문하면서 거짓 증언을 강요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김 전 이사가 "제가 거짓말을 해서 어떻게 도와드립니까"라고 호소하자 백 검사는 "인정하지 않으면 할 수 없지"라며 구속하겠다고 협박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거짓 증언을 해도 입증할 방법이 없다"며 노골적으로 위증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 "(수사에 협조하면 구형은) 집행유예해 달라고 1년만 할까"라며 피의자에게 양형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김 전 이사가 끝내 조서에 서명을 거부하자 "괜히 무슨 검사가 진술을 강요했네 그런 소리 하면 안 된다"며 비밀 엄수를 당부하기도 했다. 김씨는 수사 도중 미리 준비한 보이스펜을 이용, 백 검사와의 대화를 녹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유그룹 사건=99년 12월 주수도(51.구속 기소)씨가 세운 제이유그룹은 신종 다단계 기법인 공유 마케팅을 도입해 사세를 크게 키웠다. 지난해 제이유가 성장 과정에서 정.관계와 검.경 인사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수사에 나선 서울동부지검은 이재순 전 청와대 비서관의 부인과 강정화씨가 오피스텔을 거래했고, 이 전 비서관의 가족이 제이유 회원이었던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12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전 비서관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한편 검찰은 지난달 11일 주씨에 대해 투자자 11만2000여 명에게 4조8000여억원의 사기를 벌이고 280억원대의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사기.횡령) 등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글=천인성 기자<guchi@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수사 협조하면 감형' 제의 거부하자 세무조사 보복

녹취록 폭로 강정화씨

강정화(47.사진)씨는 6일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서울동부지검 검사가 제이유그룹 상품 담당 이사였던 김모씨에게 '수사에 협조하면 다른 범죄를 선처하겠다'며 피의자의 진술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씨를 신문하던 중 변호사 선임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검사가 피의자의 진술을 대가로 감형해주는 유죄협상제도(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강씨는 전날 "검찰 수사 이후 보복성 세무조사를 받는 등 각종 압력에 시달렸다"며 대검찰청에 당시 담당 검사를 고발하는 한편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다음은 강씨와의 일문일답.

-수사과정 테이프를 입수한 경위는.

"함께 기소됐던 김 전 제이유 이사가 수사과정을 녹음했다는 말을 들었다. 직접 물어보니 '보복이 두렵다'며 공개를 꺼렸다. 고발을 준비하면서 그를 설득해 일부를 넘겨받았다."

-테이프 내용은.

"내가 받은 것은 4시간 분량이다. 녹취된 테이프엔 검사가 김씨에게 이재순 전 청와대 비서관과 나에 대해 거짓 진술을 해주면 다른 비리는 선고유예를 받게 해주겠다며 강요하는 내용이 있다. 신문 도중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변호사 선임을 조언해주는 대목도 있다. 이런 녹취 테이프가 서너 개 더 있다고 들었다."

-세무조사가 보복이라고 믿는 이유는.

"지난해 12월 갑자기 세무조사가 들어왔다. 재산도 모두 압류됐다. 검찰총장 앞으로 '부당수사를 중지하라'는 진정을 낸 직후다. 깜짝 놀라 세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검찰에서 탈세 혐의로 고발하라는 공문이 왔다'고 했다."

-주수도 회장에 대한 선고(5일 예정됐으나 다음주로 연기)를 앞두고 재판에 영향을 주기 위한 시도라는 시각도 있다.

"선고공판이 연기됐다는 사실도 몰랐다. 오히려 검찰이 이 같은 폭로를 예상하고 일정을 바꾼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강정화씨=약사로 서울.경기도 의정부.제주도에서 법인 형태의 약국 체인을 운영 중이다. 제이유가 판매한 중.고교생용 수학.과학 학습지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학습지 원가와 납품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2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제이유 수사과정에서 이재순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이 소유했던 경기도 분당의 한 오피스텔을 1억원에 사들여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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