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체 정밀측정기술 낙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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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우리나라 수출상품이 가격경쟁면에서 신흥개발도상국에 추월당하고 품질수준에서는 선진국제품에 미치지 못해 해외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품질수준을 향상시키는데 필수적인 정밀측정기술 수준이 뒤떨어진 것으로 드러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내산업체의 보유측정기기 대부분이 정밀·정확도가 낮은 하위급 계측기기일 뿐아니라 관리가 소홀한 채 사용돼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며, 측정기술인력 또한 턱없이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표준연구소가 지난 1년동안 전국 20명이상고용 1천7백51개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밀측정표준 실태조사에서 밝혀졌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6등급이하(일반계기급과 정밀계기급)인 하위급 측정기기를 보유한 산업체가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3등급이상(표준기급)의 상위급 측정기기를 가진 업체는 1.3%에 불과했다.
또 국내업체의 정밀측정기술수준에서는 고정밀측정기술수준(수준지수가 0.9이상)이 3.7%에 불과한 반면, 저정밀측정기술수준(수준지수가 0.45이하)은 66.4%에 달하는 실정이다.
측정기기의 관리문제에 있어서는 정밀 측정표준실을 설치한 업체는 19%에 불과할 뿐아니라 설치된 경우에도 5평미만 크기이며 온도·습도조절기능이 없는등 시설환경이 크게 부진한 곳이 50%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측정기술인력은 전체종업원의 1%에 불과하면서도 이중 90%이상이 정밀측정교육을 받지않은 비전문인력으로 충당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인해 25%이상의 측정기기가 국가교정 및 검정검사를 받지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
또 상위급 계측기 대부분은 비싼 값에 수입된 제품으로 고장이 날 경우 수리·유지보수를 하지 못해 방치한 채 폐기되는 실정.
이번 조사에 참여한 책임연구원 김동진박사는『계측기기는 보유하는 것보다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계측기를 마구 방치하거나 선풍기·난로 등을 이용해 형식만 갖춘다면 있으나마나』라고 강조했다.
김박사는 또『관리에 있어서 검정·교정검사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도 현재 국내업체들의 보유측정기기 대부분을 차지하는 7등급이하는 아예 국가교정·검정검사에서 빠져있다』며『교정·검정되지 않은 측정기기는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났다』고 말했다.
국내산업체의 측정관련 투자에서도 업체당 9천2백만원으로 생산액의 0.21%에 불과한데 비해 연간 제품불량으로 인한 손실액은 3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실액 전체가 측정관련불량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표준실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만 비교해도 불량률은 현격한 차이를 보여 그 비중은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박사는 이에 대해『국내업체중 K기공과 S중공업은 측정관리상태가 양호한 대표적인 업체로 측정기기에 12가지 색상의 라벨을 붙여 주기적으로 교정·검정검사를 받고있다』며『이로 인해 두 기업은 품질이 향상돼 매출액은 높아지고 불량률은 낮아지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는 십억분의 1mm, 1억분의 1g의 정밀도를 논한다.
인공위성의 발사각도가 1도만 차이나도 목표지점에 따라 그 오차는 엄청나다는 상식은 말할 필요도 없이 국제시장에서 이겨내는 상품을 만들려면 품질향상의 주역인 측정기술에 대한연구개발비와 투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원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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