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전쟁에 푹 빠진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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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최근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는 '알제리 전쟁 다시 보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라크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요즘 전쟁소설 '야만적인 평화의 전쟁'(A Savage War of Peace.사진)을 탐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영국 전쟁사 전문 작가인 알리스테어 호른이 쓴 이 책은 알제리 전쟁(1954~62년)을 다룬 것으로,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저항세력을 물리치지 못하고 고전하다가 결국 실패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권유로 이 책을 읽었으며, 현재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 장교들에게는 이 책이 필독서로 여겨지고 있다고 AP통신과 뉴스위크가 4일 보도했다.

그러나 외신에 따르면 이 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과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의견은 많이 다르다. 부시는 주변 참모들에게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고 말하면서도 알제리에서 프랑스가 겪은 것과 미국이 이라크에서 겪은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게 본다고 말했다. 알제리 전쟁 당시에는 프랑스식 관료주의가 더 문제였다는 것이다.

반면 키신저는 최근 한 방송의 토크쇼에서 "알제리 전쟁을 이라크 전쟁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복잡하게 얽힌 상황이나, 비극이 돼가고 있다는 점 등에서 유사성이 있으며 대통령이 교훈으로 삼을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저자인 호른은 한 인터뷰에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은 초기에 직접적인 전투보다 주로 민간시설 같은 소프트한 타깃에 집중하고, 이 때문에 알제리 경찰과 프랑스군이 어느 정도 중립화됐다는 점 등 두 전쟁에 유사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드골 대통령은 전쟁을 오래 끌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며 "이라크 전쟁도 같은 위험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뉴스위크는 부시 대통령이 역사책을 읽으며 자신을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과 비교하기를 즐긴다고 전했다.

미주리주 잡화상 출신의 트루먼 대통령이 투박하고 세련되지 않아 식자층의 놀림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뉴스위크는 "부시 대통령이 자신을 '결정권자(the decider)'라고 즐겨 말하듯 트루먼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고 말하기 좋아했다"며 "두 사람의 접근 방식엔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트루먼 대통령은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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