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눈덩이 … 스토리 중심 영화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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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더스FNH 차승재(47.사진) 공동대표가 최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신임회장에 선출됐다.

차 대표는 1990년대 시작된 이른바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충무로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비트' '8월의 크리스마스' '살인의 추억' 등 도전정신과 대중성을 갖춘 다양한 화제작을 만들어 왔다. 2년 전 김미희 공동대표와 손잡고 만든 싸이더스FNH는 현재 규모로도 충무로 최대 제작사다. 지난해만도 12편의 영화를 개봉했다.

명실상부하게 제작사 입장을 대변하게 된 그는 요즘 충무로의 어려운 형편, 특히 급격히 위축된 영화사의 위상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어려운 시기에 큰 책임을 졌다.

"제작자의 위상 추락이 협회 내적인 문제라면, 밖으로는 제작비가 문제다. 5년 전 15억~20억원이면 영화 한 편 만들던 것이 이제는 평균 30억원이다. 여기에 마케팅비 20억원을 합하면 관객이 최소 147만 명이 들어야 수지를 맞춘다. 한동안 일본시장이 도움이 됐지만, 요즘은 아니다. 회원사부터 각성해야 한다. 외형보다 스토리 위주의 영화를, 제작자 중심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누가 중심이든 좋은 영화가 나오면 되는 것 아닌가.

"영화의 방향은 감독이 결정하지만 그 엔진은 제작자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연 주역이 제작자 아닌가. 막말로, 제작자는 돈 벌어서 '딴 짓'하지 않는다. 수익은 거의 영화시장에 재투입된다. 스타배우나 감독의 개런티는 올라간 반면 제작사는 점점 돈 벌기가 힘들어졌다. 배는 커졌는데 정작 엔진은 작아졌다고 할까. 공장이 열악한데 좋은 물건이 나오겠나."

-제작사 측 교섭단장으로 영화노조와 노동시간.급료 등에 대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예정대로 7월 1일부터 표준안이 적용되면 영화계의 오랜 숙제였던 스태프 처우 개선에 도움이 되겠지만, 제작비는 결국 상승하지 않겠나.

"이전에 많이 받던 쪽에서 덜 받아야 한다. 여러 방안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인상분은 제작비의 5%쯤이다. 줄 수 있으면 많이 주는 게 좋지만, 노조 측도 판을 깰 정도로 많이 받자는 건 아니다. 노사협상안은 영화산업 합리화의 터닝포인트다. 음식을 만드는 데도 간장 한 술, 소금 반 술 하는 계량이 있는데, 수십억 원짜리 영화를 만들면서는 그게 없었던 거다. 이제는 정교하게 제작하지 않으면 바로 비용에 반영되는 구조다. 사실 다른 나라도 다 그렇게 해왔다. 변별력 있는 제작사, 제작자가 나와야 할 때다."

-싸이더스FNH의 지난해 성적이 그리 좋진 않다. 개봉작 12편 중 돈 번 것은 '타짜' '달콤살벌한 연인' 두 편이다.

"손익분기점을 맞춘 건 '비열한 거리''각설탕'까지 네 편이다. 지난해 전체적으로 환경이 안 좋았다. 110편이나 쏟아졌으나 돈을 번 영화는 20편도 안 된다. 그에 비하면 나쁜 성적이 아니다. 물론 매달 한 편꼴로 개봉하다 보니 역량이 분산된 점이 있다. 올해는 조금 줄이려고 한다. 목표는 8편인데, 막상 시작하면 10편쯤 될 것 같다."

-영화계 안팎에서 인간관계가 두텁다. 정작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어 성공한 뒤에는 대개 다른 영화사로 떠나곤 하는데.

"사람을 좋아한다. 영화 일도 사람이 공장이고, 사람이 설비다. 감독들이 떠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분요구 등을 원하는 대로 해줄 수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 크면 떠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섭섭하단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새로운 재능을 찾아내고 키우는 게 프로듀서의 책무이자 프라이드다. 잘나가는 감독을 무리하게 스카우트한 적이 없다. 요구하는 대로 데려와서 수익을 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우리 회사가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한국영화계를 어떻게 내다보나.

"지난해 국내 관객 1인당 관람 횟수가 3.4회다. 미국 등을 제외하면 거의 세계적인 수준이다. 시장은 커질 대로 커졌는데, 막상 수익을 내지 못하는 현실이 무섭다. 이 상황이 오래가면 망한다. 낙관의 여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디지털 유통시장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것이다. 협회 차원에서 저작권 신탁을 받아 불법 다운로드에 대처하려고 한다. 다른 하나가 해외다. 중국이 남아 았다. 불법시장에서 한국영화에 중독된 관객이 상당하다. 그 큰 시장에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면…."

<글=이후남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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