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붕어빵 글쓰기에 상상의 날개 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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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네 생각대로 마음껏 써라
샘 스워프 지음, 이덕열 옮김, 421쪽
예원 미디어, 1만3800원

어린이책 작가인 저자는 실의에 빠졌다. 매일 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지만 좀처럼 책이 될 만한 꼴을 갖추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교사작가협의회로부터 제안을 받는다. 초등학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열흘짜리 글쓰기 교실의 임시교사였다.

그래서 찾아간 뉴욕 시내의 한 공립학교. 거기에는 여느 학교들과는 다른 독특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야구모자를 쓴 쿠바인 아빠, 터번을 두르고 수염을 기른 시크교도, 커피빛 피부의 남미 여인, 베일을 쓴 인도네시아 여인, 중국 인민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할머니, 이마에 붉은 점을 찍은 인도 여인들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들. 저자가 가르칠 학생들은 21개국 출신에, 11개 언어를 사용하는 가난한 이민자 자녀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 학생도 있다. 글쓰기 교실은 그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계속된다. 이 책은 저자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며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들을 담은 체험기다.

한 나라 아이들을 대하기도 어려운데 그처럼 종교와 문화, 언어가 다른(학생들은 영어를 하지만 부모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데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저자는 아름답고 정제된 문장을 가르치는 대신 아이들에게 우선 자유롭게 상상하는 법부터 배우도록 이끈다. 그들의 상상은 때로는 엉뚱한 밀림 속으로, 때로는 잔혹한 마녀의 성으로, 때로는 신비한 아름다움 속으로 종횡무진 헤엄쳐 간다.

처음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런 식이다. '사람들은 권투를 했는데 장갑은 30㎝였다. 금세 그들은 농구공처럼 생긴 공을 샀다. 그런데 거기에는 입이 있었다! 상어들은 매우 밥맛이었다. 곧 상어들은 점점 커졌다! 모든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나는 오전 3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달라고 말했다.'

저자는 단지 글쓰는 법만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의 기쁨과 아픔, 피할 수 없는 그들의 성장통(成長痛)을 때로는 스승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한다. 그러면서 저자 스스로도 실의에서 벗어나 글쓰기의 즐거움을 새롭게 발견한다. 논술학원에서 요약된 텍스트를 가지고 붕어빵 같은 글쓰기를 강요받고 있는 우리 아이들, 그 부모들, 교사들에게 이 책은 참된 글쓰기가 무엇인지,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나아가서는 교육이 어떻게 이뤄져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맹목적 경쟁적 교육 현장에서 한 번이라도 길을 잃어본 적이 있는 부모와 교사들에게 강력 추천!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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