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뜨거워
빌 버포드 지음, 강수정 옮김
해냄, 424쪽, 1만5000원
'주방의 신병훈련소' 격인 재료준비팀으로 배치된 버포드. 만날 글만 쓰던 먹물이 앞치마를 걸치고 칼을 잡았으나 주방일이 녹록할 리 없다. 대표적인 일이 당근을 꽁다리까지 남김없이 1㎜ 정육면체로 써는 '작은 깍둑썰기'. 그러나 두 시간 내내 썬 당근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당근썰기에 합격한 것은 한 달이나 지나서였다. "사람의 혀와 너무 비슷해 심란할 지경인" 양의 혀를 하루에 무려 150개나 다듬기도 한다. 쇼트립(소갈비의 일종)을 기름에 튀기는 장면은 너무 안쓰럽고 너무 웃겨서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정도다.
이렇듯 열 손가락에 생채기가 가시지 않는 나날들이 정신없이 지나가면서 그는 어느새 냄새만 맡고도, 소리만 듣고도 고기 익은 정도를 가늠할 만한 실력을 갖게 된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런던으로 건너가 신선한 재료의 향취를 그대로 살리는 요리법을, 이탈리아 산골로 가서는 수제 파스타 만드는 기술을 익힌다.
버포드의 실제 경험담을 담은 이 넌픽션은 400여 쪽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간다. 현대 미국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리만큼 인종적으로, 배경상으로 다채로운 인물들의 사연과 애환이 리얼하다. 버포드는 저널리스트다운 예민한 감수성에 애정과 위트를 담뿍 실어 주방의 이모저모를 생생하게 기사 쓰듯 묘사해낸다.
뉴욕타임스의 신임 음식비평가가 방문한다는 소식에 온 식당이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다든가("그 신문의 비평가는 레스토랑 사업 흥망의 열쇠를 쥐고 있다") 하는 식의 요식업계 이면사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탈리아 요리 이름을 모르더라도 읽는 데는 별 지장 없다. 단, 식전이나 저녁을 일찍 먹은 날 밤은 피해야 한다. 배가 고파 힘들 수 있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