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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패션 로마 나들이 맨발 해프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우리 고유의 디자인으로 수출품 제값 받기」가 패션계의 최고 명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패션디자이너 김정아씨가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계속된 로마 알타 모다쇼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이는 동양인으로서는 처음 정식 초청 받은 데다 초청자도 이탈리아 패션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패션협회장 주세페 델라 스키야바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패션의 국제무대 진출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던 이 호기는 예기치 않은 수하물 불착과 무리한 기획, 미숙한 준비 등으로 적이 실망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김씨는 16일 빌라 보르게세 공원 야외무대에서 열린 쇼의 1시간10분을 배정받아 의욕을 갖고 신작 3백78점을 준비해 떠났다.
그러나 70여개가 넘는 김씨의 작품을 꾸린 짐 중 일부가 로마공항에 도착하지 않았고, 그나마 도착한 것들도 공식 물품송장이 없어 이틀 뒤인 쇼 당일에야 겨우 찾을 수가 있었다.
이 때문에 쇼 시작시간까지 정리조차 안된 상태였고, 모델들이 신을 구두마저 모자라고 작아 쇼장 뒷 무대에서는 난리가 벌어졌었다.
주최측의 배려로 쇼는 1시간이 지연돼 시작됐지만 이 시간동안 쇼장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들은 세 차례나 시작을 독촉하는 야유의 박수를 보내기까지 했다.
궁여지책으로 김씨는 전 모델들이 맨발로 무대에 나가게 해 정장차림에 맨발인 기이한 패션쇼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좁고 기다란 무대사정을 고려치 않고 무리하게 모델을 출연시킨 결과 베일과 베일, 옷자락들이 서로 엉켜 관객들이 풀어 주어야했다.
결국 3백78점 중 2백10여점이 출품되었다.
현지의 디자이너들이 l백10여점 정도의 작품을 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무리한 기획이었나를 알 수 있다.
또 91, 92 추동 모드를 위한 이번 오트쿠튀르(주문복) 컬렉션에서 선보인 옷들도 외국 것에 비해 김씨의 작품은 대부분 무겁고 거추장스런 느낌을 준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에는 구두만 신고하자』는 스키야바 회장의 야유 섞인 조크나 자국이익이 깔렸다고는 하지만 현지 신문의 비평을 패션 관계자는 겸허하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로마=석인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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