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청객들, 재판은 피고인 처벌하기 위한 쇼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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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사건을 떼는데 급급해 (피고인이) 부인하는 사건을 귀찮아 한다."

현직 부장판사가 현재 형사재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 말이다. 지난 24일 대법원에서 열린 '형사재판 어떻게 바뀌어야 하냐'는 공개토론회에서다.

서울고법 김대휘 부장판사(사진.사시 19회)는 "우리 재판은 여전히 식민주의,권위주의적 색채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판정에 앉아 있는 사람은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재판은 피고인을 처벌하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의 재판 제도는 법정에서는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고,법정 외에서 판사와 검사,변호사 사이에 '거래'에 의해 결정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만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부장 판사는 형사 재판 왜곡의 원인으로 '판사들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꼽았다. 이 때문에 재판에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는 거다. 판사들이 효율성,신속성,비용 절감을 명목으로 조서만 보고 재판을 하게 되는 현상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김 부장 판사는 "(판사들이) 법정에서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사무실에서 기록을 보고 재판하는 것이 휠씬 경제적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형사 재판은 조서 재판일 뿐 아니라 모두(冒頭) 진술이나 피고인의 이익되는 사실의 진술을 생략하거나 증거의 제시 설명,증거에 대한 의견 진술 등을 생략해 축약과 편의주의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기록을 통해 유죄의 심증을 형성,무죄 추정의 원칙 대신 유죄 추정의 상태에서 재판에 임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김 부장 판사는 "법관은 신이 아니어서 재판이 모든 이를 만족 시킬 수 없다는 것은 그 태생적 한계"라고 전제했다.

그는 "그러나 실체적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실체적 정당성에 부합한다는 개연성이 인정되고,그것을 절차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재판을 '절차를 통한 정당화'로 불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재판은 사실 인정과 법률 적용 과정에 오류가 발생할 여지도 있지만,그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사회적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절차가 적법해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

김 부장 판사는 절차적 권리 보장은 형식적 적법성 뿐 아니라 법적 청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또 무기 대등의 원칙,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기회 균등과 억압의 금지,공정성과 합리성의 원칙,실직적인 토론의 규칙 보장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법정에서 변호인의 실질적인 도움을 받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충분히 배려받은 뒤 결론이 내려져야 피고인의 승복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서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의 결론은 단지 쇼나 통과의례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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