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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 퍼블리시티권 50년만 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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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퍼블리시티(Publicity)권'은 개인의 이름이나 얼굴모습, 목소리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배타적인 권리다. 그럼 사자(死者)도 이 같은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 후손이 상속을 통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해 뚜렷한 법률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서울동부지법 민사13부(김용석 부장판사)가 최근 이 같은 궁금증을 풀어 주는 판결을 내렸다.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고 이효석(1907~1942) 선생의 장녀인 이나미(75)씨가 "아버지의 초상이 들어간 상품권(사진)이 성인오락실 경품용으로 사용돼 퍼플리시티권을 포함한 초상권을 침해당했다"며 상품권 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다. 재판부는 "이미 숨진 사람도 퍼블리시티권을 인정받을 수 있고, 후손이 상속을 통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기간은 50년"이라고 1일 밝혔다. 생존자에 한정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해 온 기존의 판결 내용과는 다른 것이다.

◆"퍼블리시티권은 상속 가능"=김 부장판사는 "퍼블리시티권은 인격권보다는 재산권에 가깝다"고 말했다. 퍼블리시티권을 인격권으로 볼 경우 이미 숨진 사람에게는 적용할 수 없지만 재산권으로 보면 판단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표권이나 저작권처럼 상속도 가능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가 후손이 퍼블리시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한을 50년으로 잡은 것은 상표법과 저작권보호법 등의 규정을 유추해 판단한 것이다. 저작권보호법은 "저작재산권의 보호 기간은 저자의 사망 후 5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효석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60여 년이 지난 점을 들어 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상품권 때문에 아버지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오히려 상품권 사용자들에게 이효석 선생과 작품을 알리는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아직 대법원 판례 없어"=퍼블리시티권의 인정 여부에 대해 하급심 판결은 엇갈리고 있다. 아직 대법원 판례가 없기 때문이다.

1999년 미국 영화배우 제임스 딘의 고종사촌 마르커스 윈슬로 주니어가 대표로 있는'제임스딘사(社)'는'제임스딘'을 상표로 쓰는 국내 속옷업체 ㈜좋은사람들을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제임스딘사는 좋은사람들이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지만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패했다. 당시 재판부는 "미국 등은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만 우리나라는 마땅한 법률 규정이 없어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연예인들과 관련된 퍼블리시티권 소송이 증가하면서 법원도 이를 인정하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53년 연방항소법원이 퍼블리시티권을 처음 인정하는 판결을 했고 이후 각 주는 이를 명문화한 관련법을 만들었다. 일본은 우리처럼 명문 규정은 없지만 판례를 통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퍼블리시티권을 명문화한 저작권보호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장혜수 기자

◆초상권과 저작권=초상권에는 인격권과 재산권의 성격이 모두 들어 있다. 촬영 및 이용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는 인격권에 해당한다. 초상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퍼블리시티권은 재산권이라는 측면에서 저작권과 비슷하다. 하지만 저작권은 저작자에게, 초상권은 초상의 주인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A가 B를 촬영한 경우 A는 저작권을, B는 초상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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