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으로 각인 된 삶·투쟁 추적|정동주씨 대하소설 『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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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시인 정동주씨 (42)가 대하소설 『백정』 전10권을 최근 한꺼번에 펴냈다 (우리문학사간). 서울대 법대 재학 중 학생 운동과 관련, 구속되는 등 뿌리내리지 못한 서울의 삶을 청산, 79년 경남 사천으로 내려가 농부가 된 정씨는 84년 장시 『순례자』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중량급 농군 시인으로 떠올랐다. 총 2천9백행에 이르는 『순례자』는 시적 화자가 7일간 우리 국토를 순례하면서 종교·정치·군사·사회·교육·농촌·공해 등을 반성해 본 일종의 문명·사회 비판 시. 정씨는 이후 서사시 『논개』 등을 발표하며 정서와 의식을 함께 한 호흡이 긴 시인이란 평을 들어 왔다.
원고지 1만2천장에 이르는 『백정』은 1862년 진주 농민 항쟁을 기점으로 하여 1890년대 말까지 백정들의 삶과 투쟁을 통해 조선민중사의 한 단면을 그린 작품. 자료 수집 6년, 집필 4년 등 이 작품을 위해 정씨는 80년대를 송두리째 바쳐야 했다.
『「논개」 자료 수집을 위해 경상도·전라도를 뒤집고 다녔지요. 그러다 보니 혹시 들킬세라 귀옛말로 전해지는 백정에 관한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지요. 민주주의라는 기치 아래 온갖 억압을 자행하던 80년대 벽두, 과연 자유는 가능한 것이며 자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를 역사상 가장 억압받은 백정들의 삶과 꿈을 통해 묻고 싶더군요.』
아직도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어 신분 노출을 꺼려하는 백정들을 찾아 정씨는 전국 곳곳을 뒤졌다. 몇개월씩 도축장에서 일하고 기거하며 백정들의 풍속과 삶도 체득했다. 그들로부터 어렵게 들은 이야기들을 입증해줄 문헌 자료가 국내에는 남아 있지 않아 일본·중국·미국·영국 등 해외로 나가 한국 천민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할 수밖에 없었다. 1899년 백정들이 호적을 취득하기 이전에 가축의 마릿 수는 궁의 자료에 올랐어도 호적이 없는 백정들의 머릿수는 어느 자료에도 오를 수 없었기에 구한말 외국의 선교사나 여행자들의 눈에 비친 백정들의 묘인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백정 죽이고 살인시켰네」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개·돼지 목숨보다 못한 백정들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으며 따라 울곤 했지요. 그들의 이야기를 처음에는 서사시로 쓰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한스러운 삶 자체가 감동으로 그대로 다가와 시인의 주관이나 정서가 낄 틈이 없어 결국 객관적 서술로 역사에 편입될 수 없었던 그들의 삶을 복원시키고자 소설을 택했습니다.』
시인 자신의 개인적 상상력, 즉 시적 미학으로 묻어버릴 수 없는 백정들의 삶의 진실에서 오는 감동이 있어 시인으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는 소설 형식을 택했다는 정씨. 생명에 대한 경외 사상이 어느 계층보다 강해 도축할 땐 항상 의식을 치렀던 백정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정씨는 4년 전 집필에 들어가면서 말로 마시던 술도 끊어버릴 만큼 겸허하게 소설 작업에 임했다.
그렇게 복원된 소설 『백정』에는 「생존의 극한 상황 속에서 해방되기 위해 인간을 적으로 둘 수 없다」는 평화 공존 사상이 드러난다. 인간이면서 가축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다른 세력과 연대한 무장 봉기에 나서기보다는 끊임없는 상소, 즉 대화를 통해 호적을 취득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상이 백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가차없이 파혼 당하는 등 지금도 차별은 남아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려는 의식, 그것은 바로 파당에서 나옵니다. 파벌, 그리고 거기서 기인된 차별이 있는 한 민주주의는 요원합니다. 백정들의 진솔했던 삶과 의식을 복원, 차별의식이 진실로 허위임을 밝혀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백정들을 소설로 추적하려 합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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