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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산책] 國産 파이팅! - 앰프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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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조치훈9단이 잠시 금의환향했을 때 얘기다. 당시 세계제일 일본 바둑을 평정한 직후라서 한국은 난리도 아니었다. 국내 1인자 조훈현 9단과의 기념대국이 이때 벌어졌다. 문제는 조훈현이 받았던 대국료가 조치훈의 절반이 채 못됐다. "대국료가 문제가 아니라, 국내 프로기사가 막상 고국에서 받는 찬밥 대접이 가슴아팠다."

이 후일담은 한국산 앰프 리뷰(하이파이저널 통권 48권)에 비친다. 2년 전 음악애호가인 정용진 전 '월간 바둑' 편집장의 글이다. "기풍(碁風)으로 치면 쾌도난마의 대마킬러형"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 즉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오디오는 역시 외제라는 선입견 때문에 푸대접받는 국산의 현실을 예전 한국 바둑에 빗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그 누가 국산을 우습게 보랴. 하이파이의 경우 외산(外産)의 점유율이 95% 이상인데, 까마득한 이 진입장벽을 넘어선 하이엔드가 속속 등장했다. 그게 지난 2~3년 새 변화다. 앞에 언급된 대마킬러형은 리비도하이파이의 프리앰프 P35.0란 모델이다. 파워앰프 M35.0과 짝을 이루며, 프리.파워의 가격(3백만원대) 대비 성능을 떠나 절대 완성도 역시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다른 명성의 솔리드스테이트 앰프가 소닉크래프트다. 이 업체의 분리형 앰프인 마일스톤(3백만원대) 역시 만족도가 높은 '물건'이다.

상대적으로 회로가 간단한 진공관 앰프 업체는 훨씬 많다. 지난 2년전 일체형 앰프인 마에스트로(1백만원대)라는 히트작을 만든 SIS, 세계 정상급의 설계능력에 모델도 많은 실바웰드가 메이저급이다. 여기에 오로라사운드.크리스탈 등도 요즘 외제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 젊은 오디오 파일들을 사로잡는 업체들이다. 외제 골리앗에 맞선 '소년 다윗'인 셈이다.

문제는 연 매출액 10억원을 넘는 업체가 드물다는 점이다. 다음주 소개할 스피커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 바둑은 잠깐 새 일어섰는데, 오디오는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은 걱정일 것이다. 혹 중고로 팔 때 손해볼까봐…. 천만의 말씀이다. 요즘은 되팔 때 외제 못지않은 높은 중고 가격으로 보상받는다(인터넷 장터의 경우). 본래 손재주 많은 한국인들이 아니던가? 국산 하이파이가 골리앗이 될 가능성은 없지 않다. 필요한 건 애호가들의 사랑일지 모른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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