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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불신의 땅' 부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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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초겨울의 부안은 잔뜩 성나 있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24일 오후 부안 톨게이트를 들어선 민주당 진상조사특위(위원장 최명헌)를 마중한 것은 석 대의 전경 버스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50m 간격으로 배치된 전경들은 마치 사열하듯 조사단을 맞았다.

동승한 부안 지구당 당직자는 "부안 주민들은 피아 구분을 색깔로 한다"고 귀띔했다. 노란색 점퍼를 입은 주민들과, 검은색 제복을 입은 전경들이 곳곳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조사단이 대책위가 설치돼 있는 부안성당에 들어섰다. 성난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이제 와서 뭔 짓거리들을 하려고 내려왔어", "선거 때가 됐나벼", "밤에 돌아다녀봐. 니들은 전경들한테 안 두들겨 맞나…."

대화와 토론으로 풀기엔 불신의 골이 너무 깊었다.

간담회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전경에게 맞아 다쳤다는 환자복 차림의 주민들이 나섰다. 대통령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당장이라도 청와대에 들어가 다들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민주당 조사특위의 崔위원장은 "지난 8월에 한번 왔으나 그 뒤 당이 분당돼 오늘에야 왔다. 우리 당은 오늘 후보지 선정 백지화와 원점 재검토를 당론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안 주민들의 불신은 여전했다. 한 대책위 관계자는 "1백30일간 투쟁하는 동안 정작 필요한 때 정부도, 국회도 관심을 보인 일이 없다. 믿을 건 우리 자신뿐"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욕설로 부르는 부안. 그 불신과 울분의 땅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그 이후에도 제대로 된 해법을 마련치 못하고 있는 정치와 행정은 한없이 초라했다.

박승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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