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47. 엄앵란과 헵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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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57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열린 패션쇼에 영화배우 엄앵란씨가 모델로 섰다.

패션쇼라는 역사적인 이벤트를 한국에서 치른 후 디자이너 노라 노의 인기는 나날이 올라갔고, 서울 명동 부티크에는 당대의 멋쟁이들이 거의 모두 찾아왔다.

1953년 미국에서 '로마의 휴일'이 개봉되자 영화 속 오드리 헵번의 깜찍하고 신선한 패션 감각은 일약 패션의 새로운 잣대로 등장했다. 전 세계 많은 여성이 오드리 헵번 스타일을 추종함으로써, 영화 흥행의 대성공은 물론이고 패션사에도 큰 히트작으로 기록됐다.

그녀의 의상은 당시 파리 패션계에서 가장 젊은 유망주였던 디자이너 지방시가 맡았다. 지방시의 젊고 세련된 감각은 헵번의 개성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54년에는 영화 '맨발의 백작부인'의 에바 가드너, '컨추리 걸'의 그레이스 켈리가 오스카상을 탔고, 56년에는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 왕비가 됐다.

미국 영화는 패션과 함께 50년대 전성기를 맞아 최고 인기를 누리던 할리우드 여배우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나는 영화 '이창'에서 그레이스 켈리가 다리에 깁스를 하고 방안에 갇혀 있는 제임스 스튜어트를 찾아온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레이스 켈리가 재킷을 벗고 돌아섰는데 블라우스 뒤판이 거의 없다시피 푹 파져 있던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전성기 무렵인 54년, 나는 최은희씨의 '꿈'이란 작품을 시작으로 영화의상 디자인을 맡았다. 56년 여배우 조미령씨가 주연한 영화 '교차로'의 의상을 디자인한 뒤 이 영화가 성공하자 내게 의상을 맡기려는 여배우들이 줄을 이었다.

56년 '단종애사'에서 어린 왕비 역으로 데뷔한 엄앵란씨는 깜찍한 헵번 스타일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57년 '청실홍실', 59년 '꿈이여 다시 한번' 등 그가 주연을 맡은 수많은 작품이 히트했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여배우 엄앵란씨의 이미지 메이킹에 나는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엄씨와 나는 영화 시사회에 함께 참석해 영화 속에서 잘못된 점들을 메모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김기영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김지미씨는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명을 얻어며 은막의 스타로 떠오르고 있었다. 두 여배우는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나는 기회만 있으면 엄앵란씨에게 "더 발전하려면 미국의 캐서린 헵번을 본받아야 해요. 외모보다는 연기로 승부해야죠"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 뒤 엄씨는 신성일씨와 함께 청춘 영화의 심벌로서 한국영화사에 큰 업적을 남기는 여배우로 성장했다. 그 이면에는 그녀의 피나는 노력과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노라 ·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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