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나눠먹기식 추경안 타협/정선구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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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예산심의가 으레 그렇듯이 이번 4조2천억원이라는 사상 최대규모의 2차 추경예산안을 둘러싼 여야간 공방전이 23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국회예결위 계수조정소위(위원장 김용태 민자)는 22일 오전 10시30분부터 가동되기 시작,다음날 새벽까지 17시간동안 계속되는 난항을 겪었으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여야 모두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이었다.
민자당은 지역의보 적자보전액 3백억원을 추가로 따내 농촌에 성의를 표시하게 됐고 신민당은 새만금사업등 호남개발비를 얻어냄으로써 생색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까지 민자·신민 양당은 추경안을 싸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지만 누가봐도 표면상 대립이란걸 알 수 있었다.
양당은 「명분」을 찾기위해 겉으로 골머리를 앓는체 하면서도 나눠먹기식 타협으로 「실리」를 챙기는데 소홀함이 없었던 것이다.
신민당은 당초 예결위 정책질의때부터 『6공 정부가 추경을 아예 상례화시키면서 재정팽창으로 물가앙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6천억원의 순삭감을 요구하는 한편 새만금사업추진을 끈질기게 주장,한쪽에서 치고 다른쪽에서 얻어내는 성동격서식 전략을 구사했다.
민자당도 『세입범위내 지출이므로 재정인플레 우려는 크지 않다』는 논리로 사회간접자본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면서도 농촌표를 의식,지역의보 적자보전액의 증액요구 등 민원처리와 선심생색을 위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야당과는 주고 받는 수법으로 맞섰다.
결과적으로 양당의 「희망사항」은 거의 반영되고 그 부분만큼 삭감된 것은 다른 항목에서 조정했다. 결국 전체규모는 그대로가 됐다.
그러나 이번 추경안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전체 추경규모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었으며,따라서 「본예산 축소→세계잉여금 발생→추경편성」이라는 잘못된 재정운용의 악순환이었다. 그 문제를 놓고 크게 떠들던 여야의 논리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게 됐다.
이같은 잘못된 재정의 1차적인 책임은 물론 정부에 있지만 세입세출을 정하는 입법기관의 책임은 더욱 크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각 예상항목에 대한 낭비요소와 과다계상을 제대로 끄집어내지 못한채 자기네들 사업 흥정만을 일삼았다.
국민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독해야할 국회가 국민부담을 줄일 궁리는 안하는 것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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