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화랑|"퇴폐·향락" 씻는 강남 문화 1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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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예술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강남 지역에 화랑가가 형성되면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강남 최초의 「예」 화랑이 압구정동에 문을 연 것은 82년. 이후 10여년 만에 강남의 화랑시대가 열리고 있다.
청담동 성당∼압구정동 네거리간 도로변은 30여개의 화랑이 밀집된 화랑거리. 『화랑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85년부터 최근까지 이 일대에 형성된 고급 패션 타운의 영향 때문이라고 봅니다』
수병화랑의 유제경씨 (45)의 설명이다.
88년 초 문을 연 수병화랑은 화가 부부인 유씨와 김령씨 (44)가 공동으로 경영하고 있다.
디자이너 박항치씨의 사옥을 비롯, 유명 디자이너들의 고급의상실과 미용실·고급 시계점들이 밀집해 있는 이 거리는 부유층 고객들이 많이 찾고 있어 화랑이 들어서기에는 안성맞춤.
이 지역 화랑가는 고급 주택과 패션 타운들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전망이 밝다는 것이 업주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인사동 등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화랑보다 교통이 편리하고 주차 공간이 넓다는 것도 강점. ,
사간동에서 화랑을 경영하다 2년 전 이곳으로 이전해온 한국 갤러리의 이종구씨 (43)는 최근에도 강북 화랑들의 문의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고 했다.
『처음 이곳으로 이전할 때는 큰 모험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씨는 강남에서 예술 사업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서 개업 초기에는 걱정이 많았으나 각종 전시회 개최 등으로 자리가 잡히자 일단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리게 됐다고 했다.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지역 문화 행사로 열린 제1회 청담 미술제는 미술인과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유나화랑의 유덕화씨 (여)는 특히 개막 첫날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대형 그림을 제작하는 등 미술을 즐기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큰 소득이라고 평가.
이번 미술제는 청담동에서 개업한지 1년 이상 되고 3회 이상 기획전을 가진 11개 화랑만이 참여했지만 내년부터는 전 화랑으로 참가 범위를 확대, 성대한 행사를 치를 계획이라고 하다.
『신설 화랑가답게 원로보다는 유능한 작가 발굴에 힘써 이들에게 전시회 등 활동 무대를 많이 제공할 계획입니다.』
한국 갤러리의 이씨는 이를 위해 기획 전시회를 자주 가져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 부각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이씨는 또 미술품의 해외 개방을 앞두고 올 들어 마이애미·도쿄·니스 (프랑스) 등지에서 개최된 국제 미술전에 30∼40대의 유망 작가 작품을 출품한 적이 있으며, 중국 작가 제박석씨 등의 작품을 국내에서 전시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활발한 교류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
『그림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보고 즐기다 안목이 생기면 구입하는 것이 순서지요. 유명·인기작가의 이름만 보고 유명세에 현혹돼 그림을 구입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각 화랑에 전시된 대부분의 그림 값은 서민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싼 편. 그러나 정확한 안목을 갖고 있으면 10만∼20만원대의 판화나 1백만원 미만대의 소품 중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고를 수 있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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