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기도 안양 집을 팔고 과천 반지하 집에 전세를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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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경기도 안양 집을 팔고 과천 반지하 집에 전세를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이 크니까 집이 좁아 마음놓고 뛰게 할 수 없어서요."

요즘처럼 내 집에 목을 매는 시대에 멀쩡한 집을 팔고 전세집을 구했다는 탁정식(54.정부청사관리소 방호원.사진)씨의 얼굴에서 후회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친아들과 입양한 세 아이가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어 뿌듯하다는 표정이었다. 입양한 아이들 중 둘은 손과 발이 불편한 지체장애아라고 했다.

탁씨는 독신주의자였다고 한다. 탁씨의 인생관이 바뀐 것은 나이 서른 아홉에 부인 강수숙(48)씨를 만나게 되면서다. 수녀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성당에서 부모 없는 아이를 돌보는 일을 거들던 강씨는 결혼 후에도 "입양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결혼 5년 만에 아들을 얻었지만 강씨의 소신은 꺾이지 않았다. 결국 큰 아들이 세 살이 되던 1999년 경북 김천의 한 보육원에서 생후 몇달 안 된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시작이 어려웠지 두번째는 쉬웠다. 그로부터 5년 뒤 탁씨 부부는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손가락이 붙은 장애아 유치원생을 입양했다. 지난해에는 장애 3등급인 네살 배기 남자아이를 더 입양했다.

"이젠 입양은 그만 하고 싶어요. 저보다도 아내가 너무 힘드니까요."

아이를 넷 씩이나, 그것도 신체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탁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부인 강 씨는 결혼 전 일간지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작가다. 결혼 후 명동성당에서 다도(茶道) 강사도 하고, 아이들 논술 지도를 하는 등 자신의 재능을 펼쳐왔다.

하지만 두번째 입양(큰 딸)을 한 뒤로는 모든 활동을 접고 아이들에게만 매달린다고 한다. 탁씨는 그런 부인이 한없이 안쓰럽지만 강씨는 한 명 더 입양할 생각이란다. 며칠 전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가 입양 신청까지 하고 왔다. 탁 씨는 "집사람을 이기기가 쉽지 않아요"라며 밝게 웃었다. 네 아이 입양이 확정된 셈이다.

이들 부부의 '무모한(?) 입양'에는 강씨의 소명의식에다 남편 탁씨가 독립유공자 자손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독립유공자 자손에게는 대학까지 학비가 지원되고 취업할 때도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부친은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을 벌이다 검거돼 2년간 옥고를 치렀다. 탁씨는 요즘 월 120만원을 국가에서 보조받고 있다. 그래도 연봉 30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입에 아이 넷을 기르는 일이 쉬울 수 없다.

탁씨 부부는 옷을 사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은 엉뚱하게 다른 데 있었다.

"신체 장애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 훌륭한 분들은 정신지체아를 입양하는 사람들입니다. 해외 입양이 어려워졌다던데 그런 아이들을 국내에서 키울 수 있을 지 걱정입니다."

탁씨는 행정자치부가 선정하는 '칭찬해 주고 싶은 공무원'에 뽑혀 1일 장관상을 받는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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