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500억 수퍼컴 있지만 애써도 안될 때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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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자 기상 예보를 위해 서울 동작구 대방동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 모인 예보관들이 전면 대형 화면과 각자 테이블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에 띄운 기상도.위성사진 등을 보면서 분석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예보분석 회의(브리핑)는 매일 오전 3시와 오후 3시 두 차례 열린다. [사진=안성식 기자]

"내일 오후부터 경기도 서해안에도 눈이 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A 예보관)

"충청 이남 서해안에 눈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하고, 눈이 내릴 가능성이 있는 (경기도) 평택은 국지예보로 대체하지요. 너무 광범위하게 눈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가 또 오보를 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잖아요."(박광준 예보국장)

30일 오후 3시 서울 동작구 대방동 기상청 2층 국가기상센터 예보분석 회의실. 예보관 6명과 담당 국장 등 10여 명은 31일 날씨 예보를 위해 각자 모니터를 보고 기상 예측을 하고 있었다. 회의실 전방의 대형 화면에는 한반도 주변의 기상 흐름을 보여주는 위성사진과 한반도 각 지역의 일기도가 가득했다.

지난 주말과 전날 수도권 폭설 예보가 빗나가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은 탓인지 회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A 예보관이 경기도 서해안의 눈 예보를 주장하자 박광준 예보국장이 내용을 수정한 것도 오보 가능성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회의의 초점은 서해안 지역 어디에 언제 눈이 내릴 것인가였다.

30여 분간의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이우진(국장) 예보총괄관은 전날 밤을 꼬박 새운 탓에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분까지 가라앉아 있었다. 기자를 보는 순간 지난 밤과 아침까지 기상 변화를 마음 졸이며 지켜봤던 것이 다시 떠오르는 듯했다.

기상청은 26~27일 주말에도 수도권 지역에 폭설을 예보했다가 빗나가 곤욕을 치렀다. 30일 새벽이나 아침에 서울 지역에 큰 눈이 올 것이란 예보를 한 29일 저녁에는 예보관과 담당 국장들은 아예 퇴근을 하지 않았다.

29일 자정 모니터를 보던 예보관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위성사진을 보던 이 국장은 "서해상의 눈구름 발달이 늦어지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 국장과 박 국장, 8명의 예보팀은 30일 아침까지 기상센터의 대형 모니터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시간대별로 쏟아지는 위성사진과 일기도를 모니터에 띄우고 토론을 하며 밤을 새웠다. 기상센터는 시간대별로 쏟아지는 국내외 기상자료가 총집결되는 곳이다.

이 국장은 오전 3시쯤 서해안의 한랭전선을 따라 눈구름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 다소 안도했다. 시간이 다소 늦어지긴 했지만 눈 구름이 지나간다는 예상 시나리오가 맞아들어간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구름이 예상보다 빨리 지나가고 눈도 적게 내릴 것이라는 수치예보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 국장은 전날 서울 지역에 내렸던 대설 예비특보를 해제하기로 결정하고 소방방재청 등에도 결과를 통보했다.

오전 8~9시. 눈이 적게 내릴 것을 예상했지만 막상 적설량을 확인했을 때 그 양이 예상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나자 이 국장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이 국장은 "그동안 따뜻했던 기온 때문에 지면이 따뜻해 그나마 내린 눈도 녹아 버렸다"며 "모든 자료와 지식.경험을 총동원해도 (이렇게) 예보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생각,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강찬수.권근영 기자<envirepo@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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